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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련합작 본론페이지 위.png

  이른 새벽, 불현듯 사련을 꿈에서 깨워낸 것은 뺨을 스쳐 지난 더운 바람이었다. 한참을 뒤척이다 포근한 이불 속에 몸을 나른하게 매어두는 잠에서 겨우 벗어난 사련은 눈을 비비며 부스스하게 몸을 일으켰다.

  

  “응...?”

  

  몸을 반쯤 일으켜 세웠을 즈음, 허리께에서 느껴지는 압박감에 이불을 들춰보면 조각처럼 새하얗고 매끈한, 근육이 탄탄하게 잡힌 팔이 허리를 감싸 안고 있었다. 잠들기 이전에도 이후에도 저를 꼭 끌어안고 놓을 생각이 없어 보이는 화성에 못 말린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내저은 사련이었으나 그 눈빛만큼은 봄바람보다도 다정하고 따스한 기색을 품고 있었다.

  잠에서 깨지 않도록 조심스레 흐트러진 머리칼을 귀 뒤로 넘겨 정리해주면 평소보다 유한 기색을 띤 화성의 얼굴이 드러났다. 흑색의 고운 비단결 같은 머리칼과 그와 대비되는 새하얀 피부, 감긴 눈 밑에 그림자가 질 정도로 길고 풍성한 속눈썹, 날카로운 콧날과 그 밑의 선이 고운 입술까지. 누가 보더라도 감탄이 절로 일 법한 그 준수한 얼굴을 가만히 눈에 담던 사련은 작게 웃음을 흘리며 제 허리를 끌어안은 화성의 손등 위를 두어 번 가볍게 토닥였다.

  

  “삼랑아. 삼랑?”

  

  바람결에 스쳐 지날법한 작은 속삭임이었으나 화성은 그 어떤 순간에도 사련의 목소리를 놓치지 않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허리를 끌어안은 손에서 스르르 힘을 풀어냈다. 그에 칭찬처럼 고운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 떨어진 사련은 조심조심 팔에서 벗어나 휘장을 걷고 맨발로 바닥을 디뎠다. 새벽공기가 짙게 깔린 바닥이 제법 서늘했다. 몸을 바로 세우자 등허리를 타고 쭉 올라오는 뻐근함에 아이고, 작게 앓는 소리를 낸 사련은 허리를 통통 두드리고는 이리저리 가볍게 몸을 풀었다. 반나절이면 괜찮아지겠지. 여러 번 겪고 난 이후로는 이제 대수롭지 않은 일이 된 근육통이었기에 사련은 그저 새하얀 침의만을 꼭 여미며 창가로 자박자박 걸음을 옮겼다. 바람을 안으로 들여 사련을 깨운 것은 지난밤 미처 완벽히 닫히지 않고 열려 있던 바로 이 창문이었다. 불어오는 바람에 삐걱삐걱 숨이라도 쉬듯 움직이는 창을 아예 확 밀어젖히면 바람을 타고 들어온 습한 비 냄새가 콧속으로 훅 밀려들었다.

  

  “새벽에 비가 내렸나 보네.”

  

  창틀에 손을 짚자 느껴지는 물기에 사련은 폐부 가득 시원한 새벽공기를 들이마셨다. 극락방 2층에서 내려다본 귀시장의 전경은 오늘따라 유난히 떠들썩해 보였다. 이렇게 다들 새벽부터 분주히 돌아다니며 시끌벅적한 분위기를 내고 있는 이유는 오늘이 바로 사련, 자신의 생일이기 때문이었다.

  생일이란 분명 누구에게나 특별할, 혹은 어떤 식으로든 삶에 특정한 의미를 지니는 날일 것이었다. 그러나 어느 시점 이후로 이때까지 사련에게 있어 생일이란 잊은 것은 아니었으나 굳이 챙기진 않는 정도의 감흥만을 불러일으키는 날이 되어 있었다. 날이 더워지기 시작하고, 우산을 써야 할 정도로 비가 쏟아져 내리는 장마가 찾아올 즈음이면 이맘때쯤이던가, 하고 어렴풋이 떠오르는. 그저 만터우나 챙겨 다니던 다른 날보다는 조금 더 맛있는 걸 사 먹는 정도일 뿐인 그런 날. 이렇게 된 이유는 웃으며 말하자면 예전처럼 떠들썩하게 챙기기엔 그럴 돈이 없었고, 내심 의연하게 숨겨왔던 속내를 지금에서야 드러내 보이자면 그땐 곁을 함께하던 이들이 이제는 다 여러 이유로 제 곁을 떠나 없기에 생일이란 단어를 떠올리기만 해도 쓸쓸함이 밀려왔기 때문이었다.

  어렸을 적 부황, 모후의 품에 안겨 선물을 받으며 행복한 웃음을 짓고, 일 년 내내 하루도 빠짐없이 싸워대는 풍신과 모정이 서로에게 단 하나라도 지지 않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달려와 우렁차게 싸움이라도 걸듯 생일 축하한다 외치던 그 모습들이. 떠올리면 웃음이 터져 나오면서도 한편으로는 누가 심장을 바늘로 쿡쿡 찌르기라도 한 것처럼 따끔함이 느껴지는 추억들에 사련은 일부러 생일을 지금껏 손에서 놓았던 많은 물건들처럼 기억에서 가려두었었다.

  그러나 여러 일들이 끝난 후, 처음으로 화성의 생일을 챙겨주었던 다음 달 사련은 화성에게 마치 그동안 챙기지 못했던 800년간의 생일을 한 번에 축하받기라도 하듯 아주 깜짝 놀랄 정도의 생일축하를 받게 되었다. 황금과 보석으로 유명한 선락국의 황궁에 살았던 시절을 합쳐 보더라도 입이 떡하니 벌어지는 규모와 하루 내내 그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이어진 축하 인사에 처음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 있던 사련은 끝에 가서는 결국 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즐거운 것도 있었으나, 그보다는 언제나 저를 위하고 살피는 화성의 그 마음에, 감히 깊이를 헤아릴 수 없을 다정에 화성을 품에 끌어안지 않고서는 버틸 수가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이렇듯 계절이 지나고 해가 바뀔수록 낙엽처럼 겹겹이 쌓여가는 추억들에 사련에게 있어 생일이란 이제 다시금 즐겁게 웃음을 머금을 수 있는 때가 되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어제까지 멈추지 않고 쏟아져 내리던 비가 이날만큼은 우사대인의 안배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뚝 그친 모습에 사련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창밖으로 상체를 쭉 내밀었다. 오늘은 또 어떤 일들이 생길지, 사련은 지난 몇 번의 생일을 회상해보며 곰곰이 생각에 잠겨 들었다. 언제 한 번은 생일인 것을 잊고 보제마을 근처에서 열린 장에 나섰다가 깜짝 축하를 받은 적도 있었다. 필요한 물건을 사서 돌아가던 중 꺄르르 웃음을 터트리는 소녀들에게 꽃을 한 송이씩 안겨 받은 끝에 도착한 마을 어귀에서 화성에게 마지막 꽃 한 송이와 함께 입맞춤을 받기도 했고, 하루는 상천정에서 생일을 보낸 적도, 또 다른 날에는 청현과 그 새 친구들에게 아주 요란한 축하를 받기도 했었다. 그리고 오늘은…….

  기억을 더듬은 끝에 날이 넘어가자마자 화성에게 그 누구보다 먼저 강렬하게 생일축하를 받았던 일이 떠오른 사련은 결국 비죽비죽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소리 내어 웃고 말았다. 그렇게 손끝으로 눈가를 훔치며 화성이 누워있을 침상을 돌아보려 한 순간, 몸이 뒤쪽으로 훅 당겨지는 느낌에 눈을 동그랗게 뜬 사련은 뒤로 휘청였다.

  

  “형, 무슨 재미있는 일이라도 있었어?”

  

  어깨를 감싸는 붉은 겉옷과 함께 내려앉은 낮지만 듣기 좋은 목소리의 주인공은 두말할 것 없이 화성이었다. 사련을 이런 식으로 품에 안을 수 있는 존재는 이 세상에 오로지 단 한 명뿐이었기에 사련은 갑작스러운 접촉에 당황하는 대신 몸에서 힘을 빼고 익숙하게 그 단단한 품에 기대 화성을 올려다보았다. 위로 올라간 화성의 눈매는 날카롭고 요사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으나 사련은 언제나 그 속에서 다정함을 품고 별처럼 빛나는 눈동자와 먼저 마주치곤 했다. 가까운 곳에서 저를 응시하는 그 따스함을 품은 눈동자에 가슴 한켠이 간질간질해진 사련은 입꼬리를 둥글게 말아 올리며 고개를 흔들었다.

  

  “으응, 별거 아니야.”

  

  생일이 더욱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아니, 하루하루가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이제 그가 제 곁에 함께하는 것이 당연해졌기 때문이겠지. 사련은 생각이 이어진 끝에 벅차오른 애정이 온몸으로 퍼져나가 손끝까지 따스하게 물드는 감각을 느끼며 화성의 뺨을 왼손으로 감싸 살며시 잡아 내렸다. 아무것도 묻지 않고 제가 이끄는 대로 고개를 숙인 화성의 얼굴을 손끝으로 어루만진 사련은 발꿈치를 들고 오른뺨에 자연스레 입을 맞췄다. 그러면 화성은 또 화답하듯 사련의 눈꺼풀에, 콧날에, 뺨에, 입술에 나비의 날갯짓마냥 가벼운 입맞춤을 몇 번이나 남기며 차고 넘치는 애정을 온몸으로 표현해냈다. 어느새 서로가 숨결만큼이나 자연스러운 일상이 된 두 사람이었다.

  

  * * *

  

  사련이 열 번 중에 여섯 번은 극락방에 머무르고 있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는 상천정의 신관들은 매년 며칠 전부터 사련을 미리 찾아 생일을 축하해주곤 했다. 이번 생일에도 마찬가지였다. 이틀 전 나란히 보제관으로 찾아온 반월과 배숙은 우사향에서 직접 지은 농작물을 한 아름 안겨준 후 밭일을 돕다 돌아갔고, 그날 저녁 찾아와 또 몰래 금괴를 두고 가려 하던 일진은 인옥에게 도움을 구해 겨우 돌려보낼 수 있었다. 어제라고 다를 것은 없었다. 상천정에 올랐다가 배명과 마주쳐 농담 어린 말을 듣다 얼떨결에 원기회복에 좋다는 환약을 받아오기도 했고, 사련이 상천정에 오른 순간부터 한곳에 붙박이 기둥처럼 서서는 무시무시한 눈빛으로 사련을-사실은 그 뒤의 화성을-노려보다 배명이 자리를 뜨자마자 그 곁으로 쿵쿵대며 달려들어 잔소리를 잔뜩 선물해준 풍신, 모정과 마주치기도 했다. 그렇게 한바탕 폭풍이 휘몰아친 다음이 바로 오늘이었다.

  사련이 올해도 귀시장에서 생일을 보낼 것 같은 눈치이자 잔뜩 들뜬 귀신들은 그가 너무 과한 것은 크게 반기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 아주 잘 알고 있었기에 이번에도 ‘나름대로’ 소박한 연회를 준비했다.

  

  “큰아버지! 생신 축하드립니다!”

  “여기도 들렀다 가세요, 큰아버지!”

  

  이제 사련을 ‘큰아버지’라 부르는 걸 숨길 생각조차 없어 보이는 귀신들은 화성과 사련 두 사람이 아침에 극락방 밖으로 나온 순간부터 주변을 맴돌며 눈을 등불보다도 더 환히 반짝였다. 여기도 보고 가셔라, 저기도 보고 가셔라 하며 사련을 밀고 당기다 화성의 싸늘한 눈빛에 후다닥 꽁지가 빠져라 도망가길 반복하는 귀신들의 모습에 참지 못한 웃음을 쿡쿡 흘린 사련은 화성의 손을 꼭 잡아 제 곁에 매어두었었다.

  그랬던 것이 조금 전처럼 느껴졌는데.

  중간부터 한 번씩 멍하니 화성이 이끄는 대로 돌아다니다 그의 부름에 정신을 차리길 반복했던 사련은 또 한 번 눈을 깜빡이며 앞에서 펼쳐진 상황을 느릿하게 훑어보았다. 술병을 머리에 인 채 뛰어다니고 온갖 묘기를 부리며 가무를 이어가는 등 잔치의 흥을 돋우고 있는 이들 뒤편으로 열린 창밖의 풍경은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 푸른 빛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시간이 언제 이렇게 지난 거지?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아직 하늘이 밝았던 것 같은데. 정신없을법한 하루이긴 했으나 이렇게까지 주변이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는 아니었기에 고개를 갸웃거리던 사련은 문득 탁자 밑에서 손을 꼭 잡아 오는 화성에 퍼뜩 옆을 돌아보았다.

  

  “형, 무슨 고민이라도 있어?”

  

  맞잡은 손을 부드럽게 당겨 그 끝에 입을 맞춘 화성은 가만히 사련의 안색을 살폈다. 손끝에서 올라오는 간질거림에 신경이 쏠려 잡힌 손을 꼼질 거리던 사련은 주변을 물릴지 묻는 화성에 다급하게 고개를 내저으며 손사래를 쳤다.

  

  “아니야. 그냥, 어쩐지 집중이 잘 안 되네.”

  

  괜찮다 답하며 미간을 비비던 사련은 어느새 의자 등받이를 짚고 가까이 다가온 화성과 눈이 딱 마주쳤다. 순간 시끄럽던 연회장과 장소가 분리되어 이곳에만 시간이 외따로 흐르고 있기라도 한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유리구슬처럼 반짝이는 동시에 빠져들면 나올 수 없을 것만 같이 깊은 화성의 검은 눈동자와 마주하자 내내 이곳저곳으로 분산되어있던 정신이 그 한 사람에게로 집중되는 듯 느껴졌다. 그에 숨조차 아주 조심스레 내쉬며 홀린 듯이 그에게 시선을 고정한 사련은 문득 머릿속을 스쳐 지난 생각을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 어쩌면 나는 그와 단둘이 있고 싶었던 게 아닐까? 영 주변에 집중이 되질 않던 와중에도 화성의 목소리에만 반응하던 것은 어쩌면. 즐거운 것과는 별개로 이상하게도 자꾸만 공연히 아쉬운 마음이 들던 것은, 어쩌면.

  생각의 끝에 뻗은 손으로 화성의 붉은 옷자락을 살며시 잡아당긴 사련은 그에게만 들릴 목소리로 말을 속삭였다.

  

  “삼랑아, 우리 잠깐 나갈까?”

  

  화성은 사련의 말이 끝나자마자 아주 잠깐의 고민도 없이, 오히려 이 말을 기다렸다는 것처럼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사련의 허리를 감싸 안고 귀신같이 연회장을 빠져나왔다. 연회장의 뒷문과 연결된 골목은 평소였다면 어두컴컴했겠지만, 오늘만큼은 중간중간 은은한 주홍빛을 내는 등불이 달려 길을 제법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연회장과 중심 거리의 시끌벅적함이 넘어오긴 해도 상대적으로 조용한 길을 나란히 걷다 보면 밤바람이 뺨을 스쳐 지나며 더위에 오른 열을 식혀주었다. 이 바람보다도 더 기분 좋은 서늘함을 안겨주는 맞잡은 손에 미소지으며 화성의 옆모습을 바라보던 사련은 문득 뒤를 힐긋거리며 걱정스레 중얼거렸다.

  

  “다들 준비하느라 고생이 많았을 텐데…. 이렇게 나와도 괜찮은 걸까?”

  “괜찮아, 형. 우리가 사라진 줄도 모를 거야.”

  

  언제나 확신이 가득하게 저를 안심시켜주는 목소리에 고개를 끄덕이며 웃음을 되찾은 사련은 저 멀리 방향을 가늠하듯 하늘을 바라보다 맞잡은 손을 가볍게 당기며 제자리에 멈춰 섰다. 그렇다면, 조금 더 욕심을 내도 되는 게 아닐까.

  

  “삼랑아, 사실 같이 가고 싶은 곳이 있는데….”

  

  화성의 입꼬리가 빙긋이 올라갔다.

  

  “형이 원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 * *

  

  이유도, 목적지도 묻지 않고 사련에게 주사위를 건넨 화성은 문이 생겨나자 한 걸음 앞서 사련에게 길을 터주었다. 나란히 걸음을 옮겨 문을 넘어서면 순식간에 바뀐 주변 풍경은 보제관이나 극락방만큼이나 익숙한 장소 중 하나였다. 옛날보다는 수풀의 울창함이 덜하고, 사람들의 발길도 잘 닿지 않는 곳이었지만 이곳은 분명 태창산으로 올라가는 길목이었다. 사련이 익숙한 공기를 가슴 깊이 들이마시는 동안 뒤에서 서서히 문이 닫혀 사라지면 귀시장의 소음 대신 자리 잡은 풀벌레들의 찌르르 거리는 울음소리가 두 사람의 주변을 평화롭게 감싸 안았다.

  발밑에서 사부작, 사부작거리는 풀을 밟으며 산을 오르다 길이 어둡단 생각이 들었을 즈음, 마치 사련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화성의 은호완에서 사령 나비들이 하나둘씩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다른 이들에게 있어 이 사령 나비란 두렵고 피해야 할 존재일지도 몰랐으나 적어도 사련에게 있어서는 그저 애교가 많고 귀여운, 화성이 주변에 있음을 알려주는 다정하고 사랑스러운 존재일 뿐이었다. 그렇기에 사련은 반가운 기색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며 은빛으로 가득 찬 주변을 가만히 둘러보았다. 어둡던 숲길에는 어느새 화성의 말 없는 배려가 은은히 녹아들어 있었다.

  코끝에 살포시 내려앉아 애교를 부리는 은나비에 미소 짓다 손끝으로 날개를 쓸어 주고는 다시 날려 보낸 사련은 문득 나비가 날아간 저편의 풀숲에 시선을 두었다. 풀숲을 헤집고 날아다니는 은나비들의 틈바구니에는 어느 순간부턴가 노오란 빛을 내는 반딧불이들이 함께 섞여들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어렸을 적에도 몇 번 몰래 반딧불이를 잡으러 나온 적이 있었지. 사련은 잔잔하게 떠오르는 과거를 추억하며 반딧불이들과 은나비들이 어우러져 나는 한 폭의 그림과 같은 풍경 속에서 안온함에 잠겨 들어갔다.

  태창산의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목에는 단풍나무와 함께 사련이 직접 심어두었던 꽃나무들이 제법 자라 붉은 꽃을 아름답게 피워내고 있었다. 눈을 감으면 여전히 선명하게 떠오르는, 그 언젠가 나무들이 불타 온 산에 재가 쌓였던 기억 위를 덮을 정도로 화사하게 피어난 풍경을 애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던 사련은 가까이 내려온 나뭇잎에 손을 뻗어 물기 어린 나뭇잎을 톡 건드렸다. 두어 달쯤 후면 이 나무들도 모두 붉은 옷으로 갈아입어 온 산이 울긋불긋하게 물들겠지. 그때가 되면 또 삼랑과 함께 단풍 구경을 하며 과일이라도 따러 올까.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봄과 무덥고 습한 여름을 지나 금빛 물결이 이는 풍요로운 가을을 맞고, 온 세상이 겨울로 새하얗게 뒤덮인 위로 다시 싱그러운 봄이 피어오르기까지. 계절이 몇 번이나 지나도록 언제까지고 제 곁에서 함께할, 그렇기에 분명 함께하지 못했던 순간보다 더 많고 오랜 추억을 함께 쌓아갈 화성과의 시간을 떠올려보는 사련의 입가에는 점점 미소가 번져갔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곳은, 태창산은 비단 그와 재회한 이후뿐만 아니라 800년 전부터 함께했던 기억이 잠들어있는 곳이었기에 사련은 화성의 옆모습을 눈에 담으며 마음속에 옛 기억을 그려냈다.

  

  “제 마음속에서 당신은 신이에요! 당신은 유일한 신이고, 진정한 신이에요! 들으셨어요?!”

  

  신상마저도 모두 없어진 태자전에 아직 서툰 솜씨로도 저를 위한 태자열신도를 그려 걸어두었던 그가. 

  

  “전 영원히 당신을 잊지 않을 거예요!!!”

  

  자신조차 믿지 못했던 그 약속을, 영원이라는 말을 80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꿋꿋하게 지켜오며 온몸으로 증명해낸 그가. 그리고 그런 화성에게 드디어 믿는다는 답을 돌려줄 수 있게 된 후 보냈던 일 년간의 기다림 끝에 수많은 등불이 떠오르는 밑에서 재회했던 상원절의 순간이. 세상의 그 어떤 말로도 정의할 수 없을 가슴이 쥐어짜이는 듯이 아릿하면서도 눈물을 펑펑 쏟아내고 싶을 정도로 따스하기도, 목 끝까지 가득히 차오른 감정에 무슨 말이라도 내뱉고 싶어지는 순간순간의 기억들에 사련은 괜스레 손끝으로 눈가를 비비며 감정을 꾹 내리눌렀다.

  두 사람을 긴밀하게 묶어주는 감정에 반응이라도 하듯 점점 가까이 붙어 걷다 보면 소맷자락이 스쳐 지나며 새끼손가락이 맞닿길 반복했다. 그에 잠시 떨어져 있던 손을 다시 잡을지, 어쩔지 밑을 흘끔흘끔 내려다보며 고민하던 사련은 순간 몸의 무게중심이 왼쪽으로 휙 쏠리는 느낌에 제 발에 걸려 몸을 휘청였다. 뭐에 걸린 거지? 왼쪽에는 분명 삼랑밖에-. 당황한 상태로도 몸을 지탱하기 위해 앞으로 민첩하게 손을 뻗던 사련은 어느새 몸을 돌렸는지 코앞으로 다가온 화성에 얼떨결에 그의 품에 코를 박고 말았다. 얼떨떨한 표정으로 화성의 어깨를 짚고 몸을 일으킨 사련은 상황 파악을 위해 단단히 붙들린 팔을 위로 휙 들어 올렸다. 그러면 사련 뿐만 아니라 화성의 팔뚝까지 칭칭 동여매 붙들어놓고는 혼자 신난 듯이 좌우로 몸을 흔들고 있는 약야가 그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약야야….”

  

  곤란한 표정으로 약야를 바라보던 사련은 화성과 눈이 마주치자 결국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산에는 두 사람의 낭랑한 웃음소리만이 즐겁게 울려 퍼졌다. 약야가 다시 사련의 손목으로 돌아간 후에도 여전히 손을 깍지껴 잡은 상태 그대로 정상에 오른 두 사람은 재회했던 장소 근처의 풀밭에 앉아 숨을 골랐다.

  

  * * *

  

  환히 펼쳐진 밤하늘을 가만히 올려다보고 있자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셀 수 없이 많은 은나비들이 무리 지어 날고 있는 것처럼 하늘을 아름다운 은빛으로 수놓은 은하수였다. 오늘따라 총총히 박힌 별의 개수를 셀 수 있기라도 할 것처럼 맑은 밤하늘을 한참 동안 응시하던 사련은 화성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며 그 밑에서 펼쳐진 풍경을 눈에 담았다. 자정이 가까워지고 있는 늦은 시간에도 마을에는 여기저기 환히 불이 켜져 있었다. 산 위에서 내려다보아 아주 자그마하게 보이는 사람들이 돌아다니는 모습을 응시하고 있자면 화성은 곁에서 적절하게 운을 떼어 설명해주었다.

  

  “마을에서 축제라도 열렸나 봐. 형이 궁금하다면 한 번 가볼까?”

  

  화성의 말에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사련은 이내 미소와 함께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야, 오늘은 이렇게 둘이서 있자.”

  “형이 그러고 싶다면.”

  

  그리고 삼랑도 사실 그게 더 좋아. 중요한 말이라도 할 것처럼 손짓하더니 그리 속삭이고는 장난스레 눈을 휘어 웃는 화성에 사련은 그의 뺨을 장난스레 잡아당기고는 다시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이렇게 가만히 기대어 앉아 있자면 마치 원래부터 이리 붙어 있어야 했던 것처럼 마음속에 편안함이 파도처럼 밀려 들어왔다.

  밤의 장막 밑으로 펼쳐진 산 밑의 풍경은 장소가 장소인 만큼 어쩔 수 없이 800년 전 선락국의 모습이 떠오르는 풍경이었다. 그러나 사련은 그때와 같은 점은 그저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풍경이라는 것뿐, 그 시절의 사람들은 더이상 그곳에 자리하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선락국의 멸국을 떠올릴 때 완전히 아무렇지 않다 말할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었으나, 사련은 이제 적어도 의연한 태도로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마주할 수 있었다. 그 모든 고통스럽고 무너질 것만 같던 순간을 잊은 것이 아니라 이제 과거를 떠올리더라도 곁에서 저를 위로하고 안아줄, 그 누구보다, 어쩌면 저보다도 더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을 존재가 곁에 있기 때문이었다. 그 한 사람만 곁에 있어 준다면 언제까지고 괜찮을 것이 분명했기에 사련은 붉은 실이 매여 있는 왼손으로 화성과 맞잡은 손을 빈틈없이 꽉 깍지껴 잡았다. 평균적인 체온보다 낮으면서도 적당히 기분이 좋을 정도로 서늘한 손은 이제 사련에게 있어 그 무엇보다도 익숙하고 소중한 온도가 되어 있었다.

  이처럼 800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며 참으로 많은 것들이 변했으나, 한편으로는 원래대로 돌아온 것도 적지 않았다. 사련은 오랜 시간을 돌고 돌아 결국 저에게 다시 돌아온 붉은 산호 귀걸이가 달린 귓가를 만지작댔다. 그리고 이 귀걸이의 짝이 언제나 곱게 매달려 있는 화성의 땋은 머리끝 또한 한 번 눈에 담았다. 화성과 사련, 두 사람의 사이에는 이렇듯 인연이 시작되고 연결되며 계속되는 동안 곁을 함께한 붉은 구슬과 붉은 끈이라는 고리가 자리하고 있었다. 하늘이 정했다는 운명을 거슬러 몇 번이고 삶과 죽음의 길을 가로지르며 서로의 인연을 직접 묶어낸 붉은 실이 매인 손을 내려다보던 사련은 귓가를 만지작대던 손을 내려 습관적으로 제 목을 쓸어내렸다.

  사련을 그 긴 세월 동안 묶고 있던 두 줄의 주가는 화성이 자신의 법력을 온전히 쏟아부음으로써 사라진 지 오래였기에 이제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은 이상은 목에 붕대를 둘러매고 다닐 이유가 없었다. 그렇기에 반갑기도, 아직까지는 얼떨떨하기도, 어색하기도 한 매끈한 목을 몇 번이고 매만지던 사련은 좀 더 밑으로 내려가다 걸린 줄 위에서 손을 멈춰 세웠다. 화성이 처음 걸어주었던 순간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몸에서 떼어놓은 적 없는 반지가 걸린 줄이었다. 줄을 당겨 옷에 가려 숨겨져 있던 반지를 꺼내 손바닥에 올리면 맑고 투명해 뒤가 비쳐 보이는 반지가 달빛 아래에서 오묘한 분위기를 내며 고운 자태를 뽐냈다.

  

  “귀계에는 한 가지 풍습이 있어. 만일 귀신 한 마리가 한 명의 사람을 선택했다면, 그 사람에게 자신의 유골을 맡기게 돼.”

  

  당시에는 알지 못했으나 이제는 모를 리가 없는, 모를 수가 없는 반지의 의미를 마음속으로 되새기던 사련은 그 무엇보다 소중한, 잃어버려서는 안 될 물건이 된 반지를 손안에 꼭 쥐어냈다. 사련이 그가 ‘정말로’ 누구인지 알지 못했던 순간부터 자신의 삶을 손에 쥐여주었던 화성이, 그 깊은 정을 모두 내주고도 두려움 하나 없는 태도로 저만을 걱정하던 그가. 사련은 ‘귀인’의 이야기를 할 때마다 한없이 부드럽고 온화하며 절절한 빛을 띠던 화성의 눈빛을 마음속에 그려내고는 상체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삼랑.”

  “응?”

  

  화성의 시선은 언제나 꽃을 쫓는 나비마냥 사련의 곁에 머물렀다. 정상에 도착하고 나서는 저 멀리 꽃 위에 앉아 쉬고 있는 몇 마리를 제외하고는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간 은나비들이었기에 화성의 얼굴은 이제 달빛에 의존해 윤곽만이 얼핏 눈에 들어왔다. 그 선을 따라 그리듯이 시선을 옮기던 사련은 눈을 깜빡일 때마다 화성의 얼굴 위로 떠오르는 소중한 모습들을 하나둘씩 차례대로 마주했다.

  상원제천유 날 처음 마주했던, 품에 안겨 눈이 마주치고 놀란 표정을 짓던 홍홍아의 얼굴이, 좁고 낡은 신당에서 세상을 원망하며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묻던 그가. 태창산의 다 타고 무너져 영광을 잃은 태자전에서 눈물을 흘리며 영원히 저를 잊지 않을 것이라고 목이 터져라 부르짖던 소년 병사를. 사랑하는 이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저는 편히 잠들지 못해도 괜찮다 말하던 도깨비불이, 백검의 순간에 아무런 힘도 없으면서 저를 막아 세우려 노력하던 도깨비불의 간절함이, 저를 대신해 그 모든 저주를 안고 사라지면서도 가면과 꼭 닮은 미소를 짓던 무명이, 이제는 눈을 감고도 그려낼 수 있는 그 뒤의 얼굴이.

  그 모든 순간에 그랬듯이 어두운 밤에도 여전히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을 만큼 밝은 눈으로 저를 온전히 담아내고 있을 화성이 너무나도 소중해서. 사랑, 애정, 연모, 은애. 그 어떤 단어로도 감히 정의할 수 없을 이 넓고도 깊은 감정에 사련은 목 끝까지 벅차올라 금방이라도 입 밖으로 터져 나올 것만 같은 마음을 느끼며 입술을 달싹였다.

  형, 결혼할까?

  이리 가까이에서 마주 보고 있자면 보련에서 딱 붙어 앉아 대화를 나누었던 순간이 마지막으로 머리를 스쳐 지났다. 당시에는 당황한 채로 대충 어물거리며 지나간 순간이었으나 지금 생각해보면 그 어느 때보다 진심이었을 화성의 한마디였다. 저를 만난 이후 단 한 순간도 진심이지 않았던 순간이 없을, 언제까지고 이렇게 곁에서 같은 곳을 바라보며 함께 나아갈 나의 단 한 사람. 그 말에서부터 비롯된 뭉클함에 사련은 반지를 쥔 손을 가슴 위로 꾹 누르며 다시 한번 화성을 불렀다.

  

  “삼랑아.”

  “네, 전하.”

  

  몇 번을 불러도 반드시 돌아오는 그 목소리가 참으로 좋아서.

  

  “우리….”

  

  말이 이어지지 않는 동안 사련에게는 제 숨소리만이, 손 밑에서 쿵쾅쿵쾅 점점 시끄럽게 뛰어대는 심장 소리만이 크게 들려왔다. 이 소리가 삼랑한테까지 들리면 어떡하지? 괜스레 드는 초조함인지 긴장인지 모를 감정으로부터 비롯된 생각에 호흡을 멈춘 순간, 화성의 엄지가 그를 달래듯 부드럽게 손등을 쓸고 지나갔다. 괜찮아, 형. 낮게 가라앉은 매혹적인 목소리가 귓가에서 두근두근 울리던 거센 박동을 뚫고 닿은 순간, 사련은 뒤로 돌아가던 화성의 손을 힘주어 꾹 붙들며 참고 있던 숨과 함께 속에 품고 있던 말을 급히 내뱉었다.

  

  “결혼할까?”

  

  충동으로 건넨 한마디이자 한없이 곧은 사련의 진심이었다. 그때 미처 건네지 못했던 대답을 뒤늦게나마 전해보는 사련의 목소리는 이상하게도 약간의 떨림을 품고 있었다. 말을 내뱉고 나서야 자신이 무슨 말을 한 것인지, 그 말이 품고 있는 의미가 무엇인지 곱씹어본 사련은 빨갛게 익기라도 할 것처럼 점점 뜨겁게 열이 오르는 얼굴을 느끼며 앉은 자리에서 몸을 들썩였다. 여전히 손을 맞잡고 있었기에 화성에게도 이 열기와 더이상 빨라질 곳이 없을 만치 빠르게 뛰고 있는 박동이 전해질 것만 같아 손끝을 움찔대면 화성은 조금 전의 사련만큼이나 다급하게 그 손을 힘주어 꾹 잡아 왔다.

  등불 하나 걸려있지 않은 숲속에서 빛을 등지고 앉아 있는 화성의 얼굴은 흘러내린 머리칼로 반쯤 가려져 있었기에 사련은 그의 표정을 볼 수 없었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 마음에, 그의 표정을, 마음을 살피고 싶은 생각에 떨리는 마음으로 상체를 기울이면 순간 주변이 환해지며 화성의 얼굴이 빛 아래 드러났다. 펑펑 터지는 폭죽 소리 만큼이나 불규칙적으로 뛰는 박동을 품고 마주한 화성은 사련이 예상하던 그 어떤 것과도 맞지 않는 예상외의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장난스러운 웃음도, 놀람도, 기쁨도, 당황으로도 설명할 수 없을 표정을 지은 화성의 떨리는 눈빛 속으로 수십, 수백의 감정과 말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것이 사련에겐 모두 들여다보였다. 사련은 그 모든 것을 알았다. 별처럼 반짝이는 눈동자 속에 담긴 것이 처음부터 오로지 저 하나뿐이었다는 사실은 모른 척 할 수 없을 거대한 파도이자 사련의 생애를 구성하는 숨결이었으므로.

  그 올곧은 눈동자가 한 번 감겼다 다시 모습을 드러내면 조각 같은 뺨을 타고 한줄기 눈물방울이 흘러내렸다. 그에 이끌리듯 고개를 숙인 사련은 눈꺼풀 위에 조심스레 입을 맞추고 눈물이 만들어낸 길을 타고 내려가며 그를 달래듯, 품에 안듯 다정하게 입술을 내렸다. 한참을 그렇게 사련의 입맞춤 사이로 녹아든 애정을 받아들이고 있던 화성은 사련이 제 입술 위로 그 보드라운 입술을 맞댄 순간, 더이상 참을 수 없는 감정을 단번에 폭발시키기라도 하듯 사련의 허리를 바짝 끌어안고 깊게 입을 맞춰왔다. 하늘에서 오색찬란하게 터지고 있는 폭죽 따위는 두 사람의 감각에서 차단된 지 오래였다.

  접문을 할 때면 항상 반사적으로 눈을 감는 사련이었으나, 이번만큼은 화성과 눈을 맞춘 그대로 비처럼 쏟아져 내리는 화성의 다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세상에 오로지 두 사람만이 존재하는듯한 기분이었다. 아니, 애초에 화성의 세계는 사련이었으며, 사련의 세계 또한 화성으로 구성되어 있었기에 두 사람의 세계는 언제나 이곳에, 가장 가까운 곁에 자리하고 있었다. 

  어느새 화성의 은호완에서 다시금 날아오른 은나비들은 마치 하늘의 은하수가 주변으로 쏟아져 내리기라도 한 것처럼 폭죽의 빛이 사그라든 후에도 두 사람의 곁을 환히 비추며 맴돌았다. 기쁜 감정을 공유하기라도 한 듯 한껏 즐거워 보이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한참 뒤에야 겨우 아쉬움을 품고 떨어지면 사련의 양지옥 같은 뺨은 더운 바람 때문인지, 입맞춤 때문인지 발갛게 물들어 있었다. 숨을 색색 몰아쉬던 사련의 호흡이 돌아올 때까지 이마를 맞대고 있던 화성은 눈을 한 번 깜빡이고는 그 어떤 때보다도 진중한 목소리로 말을 건네왔다.

  

  “당신과 함께하는 길은 언제나 저에게 있어 지고무상의 영광입니다.”

  

  맞잡고 있던 손을 들어 사련의 손등에 입을 맞춘 화성은 애정만이 담뿍 담긴 눈으로 사련을 올려다보며 고운 호선을 그려 미소지었다.

  

  “그러니….”

  “형, 우리 혼인하자.”

  

  화성이 건넨 두 번째 청혼이었다. 더 이상의 답이 필요 없을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두 사람은 나란히 웃음을 터트리며 서로를 품 가득히 끌어안았다.

  

  “삼랑, 삼랑!”

  

  얼마나 격하게 끌어안았는지 풀밭으로 풀썩 쓰러진 두 사람의 얼굴 위로는 이 세상의 보물을 모두 안겨주더라도 그보다 못할 정도의 행복이 떠올라 있었다.

  

  “생일 축하해.”

  

  사련의 온 얼굴에 몇 번이고 입맞춤을 내린 화성은 생일의 첫 축하와 마지막 축하를 모두 차지하곤 그 자신이 가장 큰 선물이 되어 사련의 품에 안겨 왔다. 화성은 사련의 삶에 있어 결코 둘은 없을 단 하나였으며, 사련은 그런 화성의 유일한 신이자 사랑이고 그를 살게 하는 호흡이었다. 이렇듯 참으로 길고 긴 시간을 거쳐 완벽히 맞물린 두 사람의 마음은 앞으로 그동안의 시간보다 더 오랜 세월 동안 함께하게 될 터였다. 이제 영원을 믿는 사련은 이 세상의 모든 연회가 끝나더라도 두 사람의 이야기만큼은 결코 끝나지 않을 것임을 알았다. 그렇기에 마음껏 미소지으며 이 순간을 만끽했다. 

  그렇게 다시 한번 입을 맞춘 두 사람의 옆에 피어난 흰 꽃 위로 나비 한 마리가 내려앉았다. 그 어떤 날보다도 완벽한, 잊을 수 없는 생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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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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