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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시절은 내 인생에서 가장 삭막한 나날이었다. 한창 회사와 주말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던 나는 비어있던 옆 집에 누가 이사왔는지 무려 삼주일이 넘게 알아차리지 못했다.

  어느 평일이었다. 연차를 쓴 나는 지독한 감기로 내내 누워있다 오후 3시가 넘어서야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어제 저녁부터 텅텅 비어있던 속이 아우성을 질렀다. 죽이라도 먹어야겠다는 생각에 어기적거리며 문을 열고 환한 햇살을 마주했을 때, 낯선 청년이 마침 그곳에 있었다.

  "안녕하세요?"

  내가 먼저 말을 걸기도 전에 하얀 형체가 말했다. 청년은 한순간에 내게 압도적인 인상을 주었다. 기이한 일이었다. 분명 깔끔하고 보기 좋은 얼굴이긴 한데, 그렇게 눈에 띄는 옷차림도 아니었다. 청년은 마치 나를 위해 준비했다는 듯 그릇을 들고 있었다.

  "옆집에 이사왔는데 통 인사드릴 틈이 없어서. 마침 오늘은 집에 계시는 것 같길래요."

  "아."

  새 이웃이었구나. 순식간에 상황을 파악한 나는 멋쩍게 뒷목을 긁적였다. 그것보다 이 텁텁한 세상에 아직도 옆집 이웃에게 음식을 가져다주며 인사하는 사람이 있다니. 순박하다고 해야할지, 고지식하다고 해야할지. 나는 어정쩡한 자세로 그 플라스틱 반찬통을 집어들었다.

  "감사합니다. 잘 먹을게요."

  "걱정하지 마세요. 내가 한 건 아니에요."

  "네?"

  "맛있게 드세요. 아프지 마시고요."

  청년이 몸을 돌려 다시 자신의 집으로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나는 마른 하늘에 비라도 맞은 얼굴로 현관에 섰다. 반찬통 안에 든 것은 하필 죽이었다. 참 이상한 일이다. 이웃집에 돌리는 음식으로 죽을 가져오기도 하나? 생각해보니 나한테 '아프지 말라'고 했던 것도 같은데.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다. 그때의 나는 열이 올라 제정신이 아니었고, 배가 고파서 미칠 지경이었다. 그래서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았다. 마침 나가지 않게 되어서 좋게 되었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기묘한 새 이웃을 다시 만나게 된 건 그로부터 딱 일주일 후의 일이었다.


  이 망할 아파트는 신축임에도 끊임없이 문제점이 튀어나왔다. 첫째로, 전체적으로 이상하게 너무 더웠다. 둘째로, 이 땅은 오랫동안 갖가지 법이 둘러싸고 으르렁 거리다 간신히 재개발된 애물단지였다. 무슨 유물이 툭 하면 튀어나오는 전설의 고향 같은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공사하면서 수천년 전 복장을 입은 귀신이 튀어나온다느니 하는 괴담이 수차례 흘러나온 곳의 입지가 좋겠는가?

  덕분에 겨우 30대 초반인 내가 아득바득 모은 돈으로 들어올 수 있을 정도의 파격적인 가격이었지만, 어쨌거나 겉으론 멀쩡한 부동산이다. 귀신이든 뭐든 산 사람을 이길 순 없는 법이었다. 싼 집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나 같은 악바리들이 꿈을 그러안고 기어들어온 탓에 밤에도 아파트의 불빛은 제법 환하게 켜져 있었다.

  몇년 전 돈을 빌려준 아는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미루고 미루다보니 슬슬 받을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던 차였다. 수화기 너머로 이어지는 대화가 몇번 오고가니 제법 머리에 열이 올랐다. 밖으로 나온 나는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어조로 말했다.

  "글쎄, 천천히 갚아도 좋다고 말했지만 3년이 넘은 건 너무하잖아. 아예 생각이 없는 거 아냐? 나도 생활비가 필요하다고."

  내 귀는 수화기 너머에서 흘러들어오는 비굴한 목소리를 짜증스럽게 박아넣고 있었고, 눈은 휘영청 뜬 달과 어둠에 휩싸인 숲 속을 곁눈질 했다. 아파트 뒷산은 단지 조성을 위한 건축면적을 제외하고는 건드리지 않아 아주 빽빽하게 자라있었는데, 덕분에 사람 올라갈 길조차 보이지 않았다. 순간, 기이한 형체가 눈에 띄었다.

  "동로동에 입주한 게 뭐? 신축이라도 여기 집 값이 얼마나 싼지 알아?"

  나는 말을 주고 받으며 마치 자석에 이끌리듯 그곳을 향해 걸어갔다. 숲풀 가운데에 튀어나와 있는 형태는 어딘가 불길한 익숙함을 띠었다. 이건    마치...

  고개를 숙여 형태를 눈에 담은 나는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이런 망할!

  그건 딱딱한 점토에 뒤덮힌 사람의 손이었다. 이런게 산 속에 있다니, 대체 무슨 일이야? 분명 시체다. 누군가 시체를 저기에 파묻었다 비 같은 것에 씻겨 드러난 것이다. 내가 이런 것의 목격자가 되다니... 더럽게 재수없고 불길하다. 나는 황급히 전화를 끊어버렸다. 잠깐의 고민 후 다시 다이얼을 돌려 공안요원을 부르려 하는데, 등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그 청년이었다. 이웃집의 그 하얀 청년.

  온화한 웃음을 띤 남자는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걱정하지 마세요.'

  나는 멍하니 서서 그를 쳐다보았다. 문득 부드러운 달빛에 휩싸인 이웃집 남자의 이름이 '사련'인지 뭔지였던 것을 기억했다.

  왜 하필 그가 여기에 있는 것일까?

  영문을 모른 채 마냥 멍하니 서 있는데, 사련이 고요하게 말했다.

  "이건 시체가 아니에요."

  "예?"

  "오래된 조각품이에요. 보세요. 속이 비었어요."

  "......"

  자세히 보니 정말로 부러진 손가락 안 쪽이 텅 비어있다. 아, 이 망할 땅은 파도 파도 유물이 발굴된다는 사실을 까먹었다.

  "이런 걸 보고 놀라셨으니 집에 가서 쉬는게 좋겠어요."

  "... 아, 네."

  냉정하게 따져보면 이상한 점이 한두개가 아니었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몹시 놀라있어 이성의 저울이 마구 삐걱거리고 있었다. 상냥하고 부드러운 음성에는 강제성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없었으나, 이 차분한 이웃의 표정을 보고 있으니 왠지 정말 그렇게 하는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조각품이라도 이 어쩐지 소름끼치는 물체는 오랫동안 보고싶지 않았다.

사련이 갑작스럽게 말했다.

  "혹시 종교가 있으신가요?"

  "종, 교요."

  나는 간신히 답했다. 종교? 웬 종교?

  "딱히... 없는데요."

  "만약 오늘 밤, 꿈이라던가... 이상한 것들이 보이면 '선락태자님, 도와주세요.'를 세번 외치세요. 음... "

  사련의 얼굴은 묘하게 부끄러워보였다.

  "괜찮을 것 같지만..."

  나는 눈을 느리게 깜빡였다. 신흥종교인가? 여기서 이런 권유라니 생각치도 못했다. 그러나 그의 태도가 너무나 진지해서 비웃지는 않았다. 일단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천천히 돌아섰을 뿐이다. 어기적거리며 방으로 돌아오니 그제서야 이번에도 망할 그 놈의 채무일자를 얼렁뚱땅 늘려주었다는 것이 떠올랐다. 다시 전화하기엔 늦은 시간이었다.

  기분이 나빠 일찍 잠들기로 했다. 예상 외로 아무런 꿈도 꾸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난 나는 여전히 기분이 좋지 않았다. 따사롭게 내리쬐는 햇살도 내 딱딱한 마음을 데울 수는 없었다. 마침 간만에 주말 아르바이트도 쉬는 터라 하루종일 침대에서 뒹굴었다. 만화와 동영상 따위를 몇개 봤을 뿐인데 순식간에 해가 저물었다. 미친, 밥 한끼도 안 먹고 백수처럼 노닥거리다니. 한심함과 공복을 참을 수 없어 문을 박차고 나가려던 순간이었다. 옆집 앞에 서 있던 키가 훌쩍 큰 남자가 이쪽을 바라보았다. 어딜가나 이목을 모을만큼 잘생긴 외모였지만, 어쩐지 냉랭한 눈초리였다.

  동시에 옆집 문이 열렸다. 옆집 청년 사련이다.

  "삼랑!"

  "응, 형. 다녀왔어."

  나를 쳐다보던 만년설 같은 얼굴이 사라지고, 갈아끼우는 가면처럼 등장하는 부드럽고 따스한 얼굴이라니.

뭐야, 무슨 관계지? 나에게 신흥종교를 권하던 자애로운 이웃과 저 모델 같은 청년의 인상은 천지차이였지만 어쩐지 묘하게 합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알 게 뭐란 말인가. 나는 그들을 흘끗 쳐다보다 잠깐 일어난 호기심을 밟아 끄고 편의점으로 향했다.

돌아오는 길의 아파트 공고문엔 뜬금없이 단수가 예고되어 있었다.

  "수도관이 터졌다고?"

  나는 어이가 없어져서 잠시 종이를 빤히 들여다보았다.

  "와, 지은지 1년도 안됐는데 별..."

  이거 완전 부실공사 아냐? 혹시 자는 사이에 아파트가 무너지기라도 하는 건 아니겠지? 벌써 정나미가 뚝뚝 떨어지는 나의 스윗 홈에 한숨이 다 흘러나왔다.

  저녁으로 사온 레토르트 음식을 먹고 습관처럼 밖으로 나온 나는 담배를 피우며 달을 바라보았다. 문득 어제 보았던 기묘한 조각상이 떠올랐다.

그때 나는 왜 그 자리를 피했을까?

  단수 예고장이 붙어있던 아파트 공고판에도 조각상이 발굴되었다는 소식 같은 건 붙어있지 않았다. 단지 내에 고고학자든 공안요원이든, 다른 외부인들이 오고 간 흔적도 없었다.

  나는 이상한 예감에 홀린 것처럼 그곳으로 향했다. 하지만 아무리 열심히 눈을 치켜떠도 사람과 비슷한 형태는 찾을 수 없었다. 마치 어젯 밤의 일이 나의 착각이나 꿈이라도 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럴 리가 없다. 그렇지 않으면 아까 전 옆집 이웃이 나를 그렇게 걱정스레 쳐다봤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강하게 확신했다.

그 조각상은 사련이 건드린 것이다.

  나는 서성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이유 따위 짐작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역시 조각상이 조각상이 아니라면? 나의 한없이 선하게 생긴 이웃이 사실 살인사건 같은 무시무시한 일에 연루되어 있다면? 어느 날 일어났더니 그 상냥한 얼굴이 칼을 들이대며 '어쩔 수 없군요. 목격하셨으니...' 같은 말을 내뱉는 건 아닐까?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내 팔자가 그렇게까지 꼬였을 리가...

터무니 없는 상상에 파하학 웃음을 터져나왔다. 됐다. 다 쓸데없는 걱정이고 이상한 생각이다. 역시 일을 안해서 놀다보니 잡념이 스며든 것이다. 그렇게 몸을 돌렸을 때였다.

  나는 새하얗게 굳은 채 웃음거리로 치부했던 괴담들을 떠올렸다.

  저게... 뭐지.

  눈 앞에 있는 저 남자가 사극 촬영장에서 탈출한 배우일지, 아니면 무덤에서 일어난 몇천 년 전 유령일지 따지는 건 웃긴 일일까?

  하지만 남자는 반투명했다!

  인간은 빛을 투과시킬 수가 없다는 건 너무나 당연한 상식이다. 그러니 내가 할 일은 자명했다. 당장 몸을 돌려서 전력으로 도망치는 일이다.

  "미,친."

  세상에, 내가 이런 경험을 일주일에 두번이나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집 안에 처박혀 있을 걸 그랬다. 정말이지 욕지꺼리가 한꺼번에 튀어나왔다. 게다가 그 고대복장을 입은 남자는 너무나 정확하게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오, 오지마. 오지마. 오지마라. 어?"

  나는 한심하게도 이를 달달 떨며 주춤거렸다. 서른 남짓한 인생 동안 귀신의 귀자와 비슷한 경험도 해보지 못했다. 남들은 보았다 주장해도 나는 보이지 않으니 어쩌면 기가 센 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막상 이런 미지의 존재와 부닥친 인간의 정신은 한없이 나약하기만 했다.

  내가 새하얗게 굳은 머리로 뻗뻗하게 굳은 사지를 이끌고 뛰어가는 동안 귀신은 일정한 속도로 나의 뒤를 쫒아오고 있었다. 이 환장할 날엔 하필 창문 밖을 내다보는 사람도, 산책하는 사람도 없었다.

  "하느님! 시발! 뭐였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북하게 하시며... 젠장... 주기도문 너무 길어... 시바아아알... 알라신, 부처님! 보살님!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

  정신없이 내가 알던 신을 주워섬기던 때, 그 문장이 떠오른 건 정말 부지불식간이었다.

  "선락태자님도와주세요선락태자님도와주세요선락태자님도와주세요아무나와서도와달라고젠장!"

  그저 부르면 뭐라도 와주겠지, 하는 마음이었다. 정신없이 주워섬기면서도 기대조차 없었다. 그러나 잠시 뒤, 나는 가로등 불빛 아래에 드리워진 그림자를 보았다.

  이번에도 옆집 청년이었다.

  나는 사람을 만났다는 안도감에 멈춰섰지만, 어쩐지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사련은 가로등의 역광 때문인지 기이한 분위기를 풍겼다. 다소 이상하지만 마치 내가 불러낸 수호신이라도 되는 기분이었다. 엄숙하지만 부드러운 표정의 '이웃'은 언제나처럼 이상하게 사람을 안심시키는 미소를 지었다.

  "자주 뵙네요. 산책하러 나오셨나요?"

  "아, 네."

  나는 등 뒤로 푹 젖은 식은 땀을 느끼며 말했다. 사련은 아주 간단한 손짓만으로 내 정신을 환기시켰는데, 쭈뻣쭈뻣 돌아보니 바싹 쫒아오던 조상귀신은 사라지고 없었다.

  방금 전까지 나는 사련에게 연쇄살인마를 덧씌우는 끔찍한 상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약간의 죄책감과 함께 깊은 감사의 기분을 느꼈다. 하지만 더 큰 문제가 있었다. 나는 오늘 밤 잠들지 못한다. 이딴 경험을 해버렸으니 집에 들어가 침대에 누우면 꿈 속에서 그 미친 귀신이 또 쫒아올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때, 사련이 알듯 모를듯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사실 진짜로 부를 줄은 몰랐어요."

  "네?"

  그는 뻣뻣하게 서 있는 내 손에 무언가를 쥐어주었다. 작은 복주머니처럼 생긴 물건은 나도 종종 본 적이 있었다. 합격이나 안전운전 같은 부적을 넣어 다니는 용도였다.

  "이건 그냥 받아두시고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럼."

  이제는 미스테리 그 자체인 이웃이 가볍게 웃으며 내 곁을 떠나갔다. 나는 어안이 벙벙한 채 식은 달빛을 쬐며 서 있었다. 한참 뒤에 정신을 차린 나는 고장난 기계처럼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 집으로 돌아갔다. 샤워를 하고 어둑어둑한 방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면서도 혼란이 가라앉질 않았다.

  대체 뭐가 어떻게 된 일이지?

  사련이 귀신을 쫒아준건가? 아니, 애초에 귀신이 존재하긴 했던가? 내가 허깨비를 본 건 아닐까? 하지만 눈 앞에 그려지던 일그러진 표정의 조상귀신은 정말이지 내 머리 속에서 나올 수 없는 상상력의 비주얼이었다. 나는 슬그머니 사련에게서 받았던 복주머니를 풀어보았다.

  역시나, 부적 안에는 선락태자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잠깐만. 그렇다면... 설마 내가 목청껏 불러재낀 모든 신 중에 오직 선락태자인지 뭔지 하는 신흥종교의 신만이 나를 구해주러 달려왔단 이야기인거야? 그 세계 메이저인 하느님도, 알라신도, 부처님도 구제하지 못한 나의 위기를?

  옆집 청년의 정체는 대체 뭐란 말인가? 일반 신도? 아니면... 교주? 얼마나 강력한 영적 능력을 가지고 있기에 수천년 묵은 귀신을 뿌리칠 수 있는거지? 하지만 이런 기이한 일에 휘말리지 않았다면 나는 결코 선락태자라는 신이 존재하는 줄도 몰랐을 것이다. 게다가 사련은 그저 내 위기에 선락태자라는 이름만을 넌지시 들이밀었을 뿐, 믿으라거나 신앙을 강요하지도 않았다. 신도는 대체 몇이나 되고 수입은 제대로 되는지 약간의 궁금증이 생겼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일어난 다음 날 아침, 나의 이성은 더욱 또렷해졌다. 어젯 밤엔 기이한 현상과 나를 구해준 청년에 대한 호기심이 주였다면, 지금은 다시 의심이 고개를 든 것이다.

  사이비 종교 중엔 그런 수법이 있다고 들었다. 일부러 위기를 만들어 내 타겟을 공포에 빠뜨리고 도움을 준 다음, 이성을 잃은 타겟에게 신뢰를 얻어 종교로 유도한다고. 여유가 없어 살펴보지 못했지만 어쩌면 그 귀신도 무슨 스크린 장치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둠에 공포를 느끼는 인간의 본성은 조금의 자극만 주어도 금새 판단력을 잃고 만다. 참, 귀신이 세상에 있을 리가 없는데.

  나는 충동적으로 문을 나섰다. 최초로 먼저 이웃집에 말을 걸기 위해서였다. 핑계는 어제의 감사 인사였다. 고민을 하다 초인종을 눌렀지만 반응이 없었다. 몇 번 더 문을 두드렸으나 아직 이른 시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민망한 표정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렇게 급할 것도 없었다. 언제든 만나면 붙잡고 종교에 관심이 생긴 척 물어보면 되는 일이 아닌가.

  하지만 그 이후로는 하루, 이틀이 지나도록 나는 그 집에 방문할 일이 좀처럼 생기지 않았다. 퇴근을 하면 너무 늦은 시간이었고 주말엔 또 아르바이트가 있었다. 메모를 써붙여둘까 했으나 그것도 웃기는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나친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을까? 시간이 지날수록 호기심도 의혹도 그 날의 기억도 점점 희석되어 갔다.

  그리고 나는 어느 날, 이웃집이 텅 비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사람이 없는 집 특유의 냄새에 문득 발을 멈추고 창문 안을 들여다보고 만 것이다. 집 안은 텅 비어 있었다. 대체 언제 이사를 간 거지?

  그제서야 나는 인터넷에 선락태자교를 쳐보았다.

  미친, 그리고 나는 온 몸에 돋아나는 소름을 주체할 수 없었다. 선락태자인지 뭔지 하는 신 역시 수천 년 전 역사서에나 나오던 이름인 걸 그제야 안 것이다. 그 옛날 종교를 아직도 포교하고 다니는 사람이 있단 말이지?

  신흥 사이비가 아니라 나름 역사와 전통이 있단 점에 탄복해야 할지, 아니면 그 한없이 젊고 착실해보이는 청년이 기독교나 불교가 아니라 이런 마이너하고 전망이 없는 종교를 포교하며 사람을 도우러 다니는 점에 대해 안타까워 해야할지 모르겠다. 게다가 그는 정말로 도움만 주고서 떠나갔지 않은가. 의심에 의심을 거듭했던 내가 미안해질 지경이었다. 나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내가 겪은 기이한 일이 아직도 현실인지 착각인지 알 수 없지만 한가지는 확실하다. 우습지만 나의 공포를 이겨내는데에 하느님, 부처님, 알라신보단 선락태자가 좀 더 도움이 되었다는 점이었다.

  내 방에는 아직도 복주머니가 걸려있다. 버리기도 뭐해서 걸어놨을 뿐 뭐, 딱히 진정으로 신도가 된 건 아니다. 나 같은 놈은 매일매일 열렬하게 신앙하며 갖은 소원을 빌 정도로 성실한 종교인이 될 재목도 아니었다. 그저 지나가던 문방구에서 향 하나를 충동적으로 샀을 뿐이다. 100% 기분 탓이었다.

  오늘은 향 하나를 선락태자를 위해 올리기로 했다. 그냥, 못했던 감사의 인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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