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족의 생일은 국가의 중대사였고, 그것은 몇 년 전 도관을 향한 태자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며칠 전부터 선락국이 공감하기 어려운 분위기에 휩싸였음을 모르는 자가 없다. 하물며 방금 걸음마를 뗀 아기조차도 충분히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천하의 황극관도 그 사실을 피하지 못하고 들썩거리는 것이, 나라 전체의 흥분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했다. 모정은 옷가지 여럿을 든 채로 빠른 걸음했다. 사방에서는 태자의 생일에 대한 소리가 끊기지 않고 들려오는데, 양손으로 귀를 막을 수도 없는 노릇이니 최대한 빨리 지나치는 것이 좋았다. 온 선락국민이 그가 수련을 하는 몸이라는 걸 잊기라도 했나 보지? 물론 도관에 발을 들인다고 해서 생일을 축하하는 이유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수련을 하고 있는 몸이 무조건 속세와 멀어져야 한다는 주장 또한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을 모두 감안하고 보아도 이 태자는 자각이 현저히 부족하다. 열리는 문 사이로 보이는 얼굴이 그것을 증명한다. 나라 전체가 이렇게 관심을 기울이는 것을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표정이 아닌가? 한 쪽으로 문을 밀어내는 모정의 팔에 괜시리 힘이 들어갔다. 사련은 중의까지만 걸친 꼴로 모정을 반겼다. 행동거지를 더 신경 쓰라는 풍신의 잔소리가 한창이었는데, 큰 소리를 내며 들어온 모정은 당장의 고역에서 자신을 해방시켜줄 존재나 마찬가지다. 그 탓에 그의 환영은 평소보다도 과장된 면이 있었다.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할 리 없는 모정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화살은 짤막한 코웃음과 함께 풍신을 향했다. 전하께서 네 말은 하나도 듣지 않으시니, 이제 그만 자기가 얼마나 소용없는 말을 하는지 깨달을 때가 되지 않았어? 사련은 차마 큰 소리로 웃지 못하고 뺨을 긁적거렸다. 풍신은 사련과 모정, 둘 중 누구에게 도끼눈을 떠야 하는지 정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두 시종 사이에서 싸움이 벌어지기 전에, 사련은 잽싸게 말을 꺼냈다.
“옷을 다 입고 나면 바로 부황과 모후께 가봐야 해. 저녁 나절이면 국사도 오실 거고, 분명 척용도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그러니 괜히 싸우지 말고 어서 준비하라는 뜻 아니십니까?”
모정은 어깨를 으쓱이고는 옷을 한 벌 들어 사련에게로 다가갔다. 그런 태도가 불손한 것이라며 볼멘소리를 내뱉는 풍신은 무시한 채였다. 더 이상 저 녀석에게 하나, 하나 꼬투리를 잡고 넘어지면 정말로 시간이 부족해질지도 모른다. 아무리 지금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한들 아예 망치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듣는 자가 없으니 풍신의 씨근거리는 말소리 또한 서서히 잦아들어갔다. 사련은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양팔을 벌렸다. 곧 화려하게 장식된 옷이 사련의 몸에 걸쳐지고, 단단하게 매듭지어진다. 모정이 황극관에 정식으로 이름을 올린지도 꽤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도 사련의 방과 의복을 관리하는 일은 그의 소관이었다. 그런 만큼 모정이 들고 온 옷가지들은 전부가 오늘을 위해 준비된 것이다. 외관을 정리하는 손놀림은 빠른 동시에 정확했고. 사련을 꾸미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손길이 거친 후에는 옷차림은 물론, 올려 묶은 머리를 장식하려 가져온 물건 또한 도관이라는 장소에 어울리지 않는 화려함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대체 누가 그 점을 지적할 수 있을까. 가능한 자가 있다면 국사 정도겠지만, 그는 혼을 내기는커녕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일 것이라는 데에 무엇이든 걸 수 있었다. 그에 대해서는 국사가 자신의 제자를 아낀다는 이유 외에도 명확한 것이 있다. 태자는 오늘 태창산에서 내려가 국주가 있는 황궁을 향할 예정이었다. 생일을 맞아 낳아준 부모 얼굴 하나 보지 않고 지나간다면, 그것보다 큰 불명예가 없을 터였다. 사련이 부러 단장을 하고 나갈 채비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언제나 그렇듯, 풍신과 모정은 사련의 옆에 붙어 동행했다. 미리 불러 두었던 마차는 태창산 아래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고, 마부는 자신이 태자가 타는 마차를 몬다는 사실에 지극히 흥분한듯 싶었다. 모정은 제발 이 자가 기쁘다 못해 일을 그르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옆의 미묘한 표정을 보건대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자신만은 아닌 것 같았다. 이미 준비를 끝낸 마차를 무르기에도 영 보기 좋은 일이 아니니 타는 사정에는 변함이 없었지만. 풍신은 호위라는 그의 직책상 바깥 부분에 앉아 길을 살피는 것이 옳았다. 안쪽에 앉게 된 자들은 자연스럽게 사련과 모정만 남아, 황궁으로 가는 길은 꽤나 조용했다. 그렇지만 그것도 마차의 내부에만 한정된 것으로, 창 밖으로 비치는 사람들의 인영은 언뜻 보아도 바삐 움직이는 것이 훤하다. 빠르게 지나쳐가는 그림자를 바라보는 사련의 눈길이 퍽 부드럽다. 고개를 돌린 옆 얼굴에서 이런 지대한 관심이 어색하다는 기운은 느껴지지 않았다. 하기는, 그가 아니라면 이런 상황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겠지. 사련에게 자신의 생일날 길거리를 메우는 국민들과, 그들에게서 쏟아져 나오는 애정은 익숙하기 그지 없는 것들이다. 그야말로 훌륭한 황족의 귀감이 아닌가. 모정은 가까스로 뺨이 실룩거리지 않도록 참아냈다. 사련은 여전히 바깥을 보는 채로 입을 열었다. 황극관에 들어가기 전에는 항상 연회를 열었어. 자신의 표정에 집중하던 모정의 대답은 한 박자 느린 구석이 있었다. 태자전하의 탄생일이시니까요. 이 말을 들은 것이 풍신이었다면 모정은 자신을 흘겨보는 눈빛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가 바깥에 있어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이 다행이라 하기도 어려운 것이, 애초에 모정은 풍신이 어떤 반응을 하건 간에 이러한 대답을 망설이지 않는 인간이었다. 그리고 눈앞에 있는 것은 이러한 태도를 문제 삼지 않는 황족이었고.
사련은 네 말이 맞다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시선은 여전히 잘 보이지도 않는 창밖을 향한다. 모정이 말하는 바는 스스로가 충분히 느끼고 있다. 그는 탄생부터 축복받아온 금지옥엽의 태자로, 지금껏 단 한 번도 축하를 걸러본 적이 없는 터였다. 그의 기억 속 연회는 선락국의 부와 예술을 전부 보여주기라도 하겠다는 것처럼 화려했고, 아침에 시작해 밤까지 이어져 하루가 유독 길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당일이 오기 한참 전부터 나라를 감싸기 시작하는 들뜬 열기와 거리를 장악한 부산스러움은 그의 피부에도 확연이 와닿았다. 그 모든 것들 중 연회만 없어졌을 뿐, 황극관에 들어간 후에도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사련에게도 조금은 당황스러운 사실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색을 하고 그만두라 말하는 것도 이상한 대응이다. 사련 같은 성정을 가진 자들은 오히려 기쁘게 받아들이는 쪽을 택하기 마련이었다. 이쯤 되니 돌아오는 날짜는 자신의 생일이기보다 국민들의 연례 행사에 가깝게 느껴진다. 어찌 보면 새삼스럽고 당연한 수준의 감상이었다. 그는 황족의 생일이라는 것이 단순히 개인의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있다. 많은 축하와 선물 중심에 서있지만, 스스로가 진정으로 여기는 당일의 주인공은 자신보다도 큰소리로 웃고 떠드는 자들이 아닌가 싶다. 이제 태자의 생일이라는 것은 그저 명분에 불과했다. 나라의 모두가 달아오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핑계로, 사람들은 축제라도 열린 양 하루를 즐긴다. 이 사실은 사련에게 퍽 유쾌하게 다가오는 것이었다. 자신의 이름을 내세워 즐겁게 날을 보내는 것 또한 자신에게 즐거운 일이 아니던가. 게다가 자신이 그만큼 사람들의 마음에 드는 태자가 아니었다면, 태자의 생일은 기쁘게 웃을 수 있는 날이 되지도 않았겠지. 마차 밖의 그림자가 소란스럽게 지나갈수록 사련의 웃음은 짙어졌다.
마차가 성문에 도착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외부에서 불렀던 터라 함부로 들어갈 수 없어 내려야 했지만, 사련은 개의치 않고 땅을 디디며 감사를 건넸다. 이 인사만으로도 마부는 몇 달은 족히 자랑할 거리가 생겼구나 여길 수 있었다. 풍신은 주변을 면밀히 둘러보다가, 무언가를 발견한듯 사련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무슨 일이냐며 고개를 돌리니, 그가 가리킨 쪽에는 한 무리의 어린 아이들이 보였다. 입가에 과자 부스러기가 잔뜩 묻어 있는 것이 길거리에 모여서 군것질이라도 하는 것 같았는데, 이 또한 특별한 날이니 혼나지 않고 지나갈 수 있는 기회였다. 사련은 금방 풍신이 말하려는 바를 깨닫고 고개를 끄덕였다. 저들의 손에 들린 과자는 전부가 같은 모양으로, 태자의 생일을 기념하여 황궁에서 나눠주는 것이었다. 황성 근처의 선락인들은 이것은 태자전하가 내려 주시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기쁘게 받아들였다. 물론 사련과 풍신 또한 몇 번 먹어본 적이 있는데, 과자의 단 맛은 그의 취향에 가깝지는 않았다. 하지만 평소 달게 만든 음식을 먹는 일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그 달콤함이 다시 태자의 생일을 기다리는 이유가 되기도 할 터였다. 풍신은 이 사실을 꽤 자랑스럽게 생각하여, 멈추지 않고 모정의 옆구리를 찔러댔다. 모정은 아이들에게 시선을 주지 않고 있었는데, 이런 식으로 사람을 건드려대니 결국 짜증스럽게 시선을 돌려야 했다. 또 무슨 말을 하고 싶어서 난리야? 삐딱한 어투에도 풍신은 드물게 화를 내지 않았다. 지금 그에게는 모정과의 다툼보다는 다른 것이 중요한 듯싶었다. 풍신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자신의 주인과 나라에 대한 자부심이 묻어 나왔다. 너도 먹은 적이 있지? 짤막한 물음은 한순간에 모정을 조용히 만들었다. 사련은 자신도 모르게 모정을 바라보았다. 질문한 자는 깊은 뜻이 있던 행동이 아닌 탓에, 자신이 물은 것도 금세 잊어버렸다. 그렇지만 모정의 입술은 끈적한 것을 발라 붙인 것처럼 달라붙어 열리지 않았다.
그 당시도, 지금도, 모정의 대답은 쉬이 예상할 수 있었다. 달라진 것은 그 질문이 얼마나 그의 가슴을 후벼팠느냐를 고민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옛날의 금지옥엽 태자로서는 장족의 발전이나 마찬가지라, 스스로도 놀라움을 감출 방법이 없었다. 이전의 그 날에는 분위기가 영 어둡고 험악해진 둘을 말리느라 급급했으니까. 게다가 사련이 온 것을 눈치챈 척용이 불에 기름을 부었으니, 더 이상의 설명은 하지 않아도 예상이 가능할 테다. 지금의 풍신은 저처럼 알아챘을까 모르겠는데, 만약 그러지 못했다면 지금도 하늘 위에서 모정과의 다툼이 이어지고 있을 거라 장담할 수 있었다. 뭐, 이제 와서 그런 생각을 해보아도 결국엔 전부 한참 전에 지난 일이지만. 풍신과 모정을 마지막으로 본 지도 꼬박 10년이 흘렀다. 둘을 떠올린 것 자체가 오랜만의 일이라 그 조금의 일을 되짚는 것도 많은 기억을 거슬러 올라야 했다. 그렇게 되고 보니 그 생일날의 기억으로 남은 것은 그것들이 전부였고, 다른 일들은 형체마저 잘 잡히지 않고 흐릿하기만 하다. 갑작스레 과거를 생각한 이유가 고깃국 한 그릇에 있다고 하면 다들 어떻게 반응할까? 대체 어떤 이유로 자신들을 기억했는지 보다도, 사련이 남의 생일 잔치에 끼어들어 음식을 얻어먹는다는 데에 더 큰 충격을 받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된다 해도 그로서는 어쩔 수 없다. 돈도 없이 며칠을 내리 굶은 채로 한 마을의 잔치와 마주친 이상 그 후의 일은 사련의 의지가 아닌 불가항력에 가까웠다. 이 정도는 둘 다 충분히 이해해줄 거야. 이런 생활을 시작한지 1년 째에는 고물을 주워 생계를 잇는다는 것 자체가 어색하고 부끄러웠다. 10년이 지난 지금은 난생 처음 보는 사람의 생일을 넉살 좋게 축하하며 잔칫상에 앉게 된 것이다. 이것 또한 나름대로의 발전이 틀림 없어, 사련은 개의치 않고 곯은 배를 해결했다.
잔치라고 해서 옛날 자신이 겪었던 것 같은 금으로 장식한 연회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온 마을 사람들에게 식사를 한 끼 대접하는 것도 결코 작은 일이라 할 수는 없었지만. 주인공은 마을 지주의 아드님으로, 그 품행이 바르고 성정이 온화하여 마을 사람들에게 받은 만큼 베푸는 것이라 한다.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면 사련 같은 내력 모를 떠돌이는 앉지도 못했을 일이었다. 여행 도중 끼니를 때우시라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기는커녕 좋은 날을 망치지 말라고 쫓아낼 수도 있었겠지. 높은 사람이 그러시니 처음에는 사련에게서 거리를 두었던 주민들도 그를 쉽사리 쫓아내지 못했다. 그러던 중 준수하게 생긴 떠돌이가 자신들 도련님의 성품을 칭찬하니, 이 낯선 고물장수에 대한 경계심은 점차 허물어져 갔다. 사련이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이미 그 도련님의 이름부터 나이, 얼마나 사람들에게 잘 해주는지에 대한 일들을 속속들이 들은 후였다. 이런 상황에서 어찌 사련이 과거를 생각하지 않을 수 있을까. 높으신 분의 생일을 꼭 자신의 일인 양 기뻐하고 축하하는 사람들. 온 사람들에게 대접하는 식사 한 끼와 설탕을 잔뜩 넣어 만든 과자. 다른 것은 그 형태뿐이고, 본질은 놀랄만큼 똑같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과거의 잔상이 눈앞에 나타난다. 한 그릇 가득 채운 고깃국을 마시는 데에도 혀에서는 과자의 단 맛이 도는 듯했다. 이제는 그만 일어서서 자리를 떠야 할 때라고 말해주는 걸지도. 사련은 빈 그릇을 올려두고는 몸을 일으켰다. 들뜬 분위기는 가라앉을 기미 보이지 않고, 오히려 슬슬 술상이 나오기 시작하는 것이 외지인은 빠져주는 게 여러모로 마음이 편할 테다. 팔에 감긴 약야 또한 너무 오래 가만히 있어 좀이 쑤시는 모양이고. 하지만 사련은 곧바로 길을 나서지 못하고, 그 도련님의 시종에게 붙잡혀 당일의 주인공을 만나러 가야했다.
길었던 축하 세례가 끝나고 숨 돌리고 있던 남자는 사련의 얼굴을 보자 반갑게 고개를 숙였다. 이어지는 감사에 사련은 개의치 말라는 듯 손을 저었고. 실은 사련이 어려움 없이 잔치에 끼게 된 사연에는, 도련님의 인성 말고도 한 가지 비밀이 존재했다. 그가 이 마을에 도착한 때는 바로 어젯밤으로, 고물을 얻으러 다니기에도 시간이 늦어 마을 어귀 적당한 곳에서 잠을 청해야 했다. 하필 그 날 저택 담벼락 주위를 어슬렁거리던 귀신에게는 불운이 아닐 수 없다. 사련은 그 귀신이 눈에 들어오자마자 그 귀신을 제압하고 상황을 정리하여, 어찌할 줄 모르고 숨을 죽이고만 있던 저택의 문을 두드렸다. 경삿날 직전에 갑자기 추근덕거리는 귀신을 물리친 데다가 내일이 좋은 날이라면 혹시 모르니 부적까지 써주겠다, 하고 수호부를 내민다. 그런 도사의 등장에 저택 사람들은 감사의 눈물을 흘려도 이상하지 않을 지경이 되었다. 사련은 그들의 권유를 거절하지 않고 남몰래 저택에서 밤을 보낸 후, 낮이 되어서는 막 마을에 도착한 것처럼 잔칫상에 끼어든 것이 완벽한 전말이다. 그런 중요한 손님이 그만 자리를 뜨겠다는데, 아무 인사 없이 보낼 마음을 먹을 집주인은 없을 터였다. 사련의 품에는 금세 며칠 간 먹을 수 있는 식량과, 꽤 묵직한 돈주머니가 안겨졌다. 사양하며 체면을 따지기에는 사련의 평소 생활은 언제 길바닥에 쓰러질지 모르는 떠돌이 고물장수였다. 처음에는 그럴 생각으로 도움을 준 것이 아니었다 한들, 자신에게 주는 것을 괜히 거절할 필요는 없었다. 사련은 그것들을 원래의 짐 주머니에 넣으며 물었다.
“어젯밤에 관해 말할 생각은 없으신 거죠?”
저택의 사람들은 그 누구도 간밤의 귀신 이야기를 흘리지 않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잔치를 열었다. 그 까닭에 마을 구석구석에 퍼졌을지도 모르는 두려움은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다. 많은 시종들 중 한 사람 정도는 슬쩍 흘릴 법도 한데, 밥을 먹으며 둘러봤을 때에는 사련조차도 그런 기색을 찾아볼 수 없었다. 필시 이 도련님 정도로 인품 높은 누군가가 말하지 말라며 신신당부를 했을 테지. 예상대로 도련님은 웃음을 머금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식으로 망치기에는 좋은 날이 아쉽지 않습니까.”
그가 말하는 ‘좋은 날’이란 단어는 자신의 일을 뜻하는 것 같지 않고 꼭 다른 사람의 사정을 이야기하는 듯했다. 아마 지금도 밖에서 웃으며 떠들고 있을 사람들에게 향하는 것이 분명한. 그 마저도 사련은 쉬이 눈치챌 수 있었다. 다른 누구 아닌 자신의 생일임에도 타인의 행사 같다는 감상은 스스로도 족히 겪은 일이 아니던가. 당시의 선락태자에게도, 이 도련님에게도 자신보다 더 오늘을 즐기고 있는 자들에게 악감정은 없다. 오히려 자신을 위한다며 웃고 즐겨준다면 그 사실만으로 기쁠 뿐. 사련은 누구보다도 이런 심리에 공감할 수 있었다. 더 자세한 설명 없이 마주 웃어 보인 이유는 그 때문이다. 그것이 도련님에게도 전해졌는지, 그는 방을 장식하고 있는 종이꽃 중 줄기가 길고, 꽃잎이 구겨지지 않은 것을 뽑아 내밀었다.
“도사님의 생일도 오늘이라 들었습니다.”
사련은 잠시간 멍해 종이꽃을 바라만 보다가, 도련님의 가벼운 재촉에 급히 줄기 부분을 받아 들었다. 확실히, 내일이 도련님의 생일이시니 준비할 게 많다는 하인들의 대화에 끼었던 화제 중에는 자신들의 생일 이야기도 몇 있었다. 하지만 바로 다음날일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았는데. 그제서야 사련은 자신이 최근 몇 년 간 생일 날짜 같은 것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밤낮 없는 길거리 생활을 오래 전전하다 보면 자세한 날짜 같은 것은 금세 잊어버리기 마련이다. 어디를 가나 즐기는 사람들이 있는 명절 수준이어야 그 날이 그 날이구나 깨닫지, 혼자만의 일인 생일은 가장 먼저 잊혀지는 존재였던 탓이다. 축하해주는 사람 없고, 날짜도 잊어버린 생일은 지나간 세월 사이로 사라진다. 그 사실을 일깨워준 것은 장식용 종이꽃 한 송이다. 불과 몇 년 전이었다면 얼굴을 붉혔을지도 모른다. 고물을 주워 파는 쑥스러움과 마찬가지로, 이전과는 너무나도 달라진 현실에 적응이 덜 되었음을 몸소 증명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사련이 약 10년만에 받은 선물이었다. 기뻐하지 않고 다른 감정을 내보이기엔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가 멍하니 줄기만 매만지고 있으니, 도련님은 역시 너무 간소하냐며, 차라리 음식과 돈을 더 준비해드릴까 물어보았다. 사련은 그 권유를 거절했다. 이 꽃, 정말 마음에 들어요.
한 때 그의 생일은 모두가 그를 축하하지만, 사련의 날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차라리 생일을 명분으로 누군가에게 베푸는 것이 더 맞는 날짜였지. 그 사실에서만 오는 즐거움이 있었으니 나쁜 경험이 아니다. 상천정의 신관일 적에 맞이한 생일에는 유망한 신인, 선락태자를 위해 도착한 선물이 궁의 천장을 찌를 듯했다. 지금은 보고 싶어도 어려울 온갖 보물들을 잔뜩 보았으니, 그 또한 나쁜 경험이 아니다. 정말로 혼자가 된 후 1년 째에는 그 축하들을 그리워했다. 앞으로 그런 식으로 누군가에게 축하를 받을 일은 없을 것이라고, 일부러 한 해마다 돌아오는 날짜를 신경 쓰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그러고서 10년째가 되는 날, 생면부지의 누군가에게 이런 축하를 받을 거라고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그와 함께 받은 것이 이전의 보물보다도 훨씬 마음에 든다는 사실 또한 그렇다. 꽃이라는 선물은 항상 그의 마음을 파고 들어 깊은 자국을 남기는 구석이 있었다. 도련님이 그것을 알 리가 없으니, 이는 오랜만에 맛보는 행운이 틀림없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조금은 유치한 마음이 샘솟는다. 그래. 이제 자신의 생일은 오로지 혼자만의 일이다. 그가 말하기도 전부터 온 나라의 사람들이 명절 마냥 기뻐하지 않았다. 알고 있는 자도, 기뻐할 수 있는 자도, 축하해줄 수 있는 자도 단 한 명. 그러니 스스로 축하한들 아무도 모르고, 비웃을 수 있는 사람도 없다. 손에는 아주 오랜만에 받는 꽃이 들린 채다. 이보다 더 완벽한 상황이 있을 리가. 사련은 조심스레, 입 안에서만 몇 마디를 굴렸다.
생일 축하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