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골목을 돌자 마자, 무언가가 펑 터지는 소리와 함께 눈앞이 확 밝아졌다. 사련은 얼떨떨한 상태 그대로 멈추어 섰다. 저멀리서 몇몇 장정들이 떠들고 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거의 완성이야. 축제 날에 맞출 수 있겠어!"
"다행이구만. 멀리서도 보러 오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볼거리를 빼놓을 수 없으니까 말야."
뭔가 했더니 마을 사람들이 다가올 축제를 위해 폭죽을 만들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사련은 저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를 띄웠다.
그는 이제 막 신도들의 기원을 들어주고 귀시장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생각지도 못하게 일이 길어졌던 탓에 어느새 벌써 저녁이었고, 하늘에는 황혼이 깔려 있었다.
오늘따라 유달리 붉은 노을은 마치 사련이 사랑하는 이의 색과 닮아 있는 것 같았다. 사련은 어서 그의 곁으로 가기 위해 조금 더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 문득 자리에서 멈추어 서고 말았다.
"제 생일에는 검을 사주세요!"
자신만만한 기색이 가득한 어린아이의 목소리. 그에 화답하듯 부드러운 여인의 목소리가 뒤를 이었다.
"아직 네 나이가 어리니 검은 무리란다."
"아니에요. 선생님께서도 다른 애들보다 제 진도가 훨씬 빠르다고 말씀하셨는걸요."
아이가 칭얼거리듯 어머니에게 달라 붙자, 어머니는 곤란한 표정이었다. 도움을 요청하듯 그녀가 옆에 있던 남자를 바라보았다. 남자가 어깨를 으쓱했다.
"앞으로도 열심히 하겠다고 약속한다면, 목검 정도는 사주마."
"정말요?!"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마, 당신. 진짜 날이 든 검도 아닌데 뭘."
어머니는 한숨을 내쉬었지만, 뛸 듯이 기뻐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자 이내 미소를 지었다.
"도무지 네 고집에 당해낼 수가 없구나."
어머니가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자 아이는 환하게 웃어 보였다.
"자, 어서 집에 가자고. 이러다가 해가 지겠어."
아버지가 그들의 걸음을 재촉했다.
사련은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가, 어느새 꽤 시간이 지체된 것을 깨달았다.
무척 다정한 일가족이었다.
아마 자신이 수선을 시작했을 때도 저 아이의 나이쯤 되었던 것 같다. 그때 검술에 재능이 있다는 말을 듣자 어머니가 무척 자랑스러워하셨던 것도, 아버지가 아닌 척 해도 슬그머니 웃었던 것도 기억이 난다.
사련은 희미한 웃음을 띄웠다.
자리에 멈추어 선 그를 다른 사람들이 힐끔거리면서 스쳐지나갔다.
모두 해가 떨어지기 전에 걸음을 서두르는 듯했다. 그들에게 분명 돌아가야 할 집이 있는 것이리라.
사련은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그의 생일도 얼마 남지 않았다. 몇 백년동안 거의 챙기지 않아서 낯설긴 했어도 말이다.
걸음을 재촉했는데도 불구하고 걷다 보니 밤이 되어 버렸다.
하필이면 달도 구름에 가려져 주위가 온통 어두웠다. 산길을 넘어야 하는데 큰일이었다.
사련은 낭패한 심정을 느끼며 뒤를 돌아보았다. 마을에서 부싯돌이라도 얻어 왔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가 걸어온 길 저 멀리에서 민가의 환한 빛이 아른아른했다.
그러나 그 빛을 따라 다시 돌아가기에 마을은 이미 꽤 멀어져 버렸다.
돌아갈 수가 없었다. 사련은 발을 망설였다.
아직도 길은 한참 남았는데.
방법이 없었다. 사련은 어두운 밤길이지만 별빛에 의지해서나마 걷기로 했다.
그런데 그 때 문득, 눈앞이 다시 밝아지는 것이 보였다.
무척이나 환하고 따뜻한 빛이었다. 그 다음으로 들린 것은 즐거운 듯한 목소리였다.
"형, 기다리고 있었어."
사련은 그 목소리를 듣자 가슴이 평소보다 빠르게 뛰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의 몇 걸음 앞에 한 소년이 서있었고, 그의 손에는 밝은 등불이 걸려 있었다.
그 언젠가 그를 위해 띄워주었던 장명등과 비슷한 모양새였다.
"삼랑."
사련은 반갑게 그의 이름을 불렀다. 등불을 든 소년의 눈매가 웃음을 띄웠다.
"같이 돌아가자."
사련은 고개를 끄덕이고 앞을 향해 걸어 갔다.
삼랑이 들고 있던 불빛 덕분에 발을 헛딛거나, 주춤거리지 않을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그가 가져다준 온기가 사련의 가슴 속을 따뜻하게 덥히는 것만 같았다.
두 사람은 등불의 빛에 의지해 나란히 걸어 갔다.
"오늘은 어떤 기원을 들어주고 왔어?"
"마을에 있던 어떤 사람이…."
재잘대는 목소리가 길 위에서 울려퍼졌다. 두 사람은 서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사련이 혼자 있을 때는 멀기만 했던 길이 순식간에 짧아진 듯했다. 마치 기적처럼 말이다.
사련은 삼랑의 손을 꼭 잡았다.
어느새, 저 멀리 두 사람의 집이 희미하게 보이는 듯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