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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련은 꽃나무를 심었다. 눈으로 보았을 때는 몇 그루 되지 않는 듯싶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꽤 많은 시간이 지나가 있는 채였다. 나무가 제대로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생각보다 힘이 들어, 더 이상 남은 나무가 없다는 사실이 확실해졌을 때에는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뿌리 부근의 흙을 다지던 풍신은 막연한 물음을 던졌다. 무슨 꽃이 피는 겁니까? 그 질문에 명확히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는 조금 이상한 일이다. 제대로 된 대답 대신 난감한 웃음소리만 이어지는 상황에, 사련은 그들이 말하지 않아도 안다는 것처럼 머쓱한 손길로 이마를 문질렀다. 태창산, 황극관 주변에 이런 꽃나무들을 심으려 가져온 것은 사련이 아니던가. 풍신과 모정은 우연히 잡힌 일손일 뿐이었다. 안부를 확인하려 옮긴 발걸음이 강제 노동이 될 줄 알았다면, 둘 다 마음의 준비를 충분히 하고 왔을 터였다. 하지만 현실이 그렇지 못한 것은 확연한 사실이라, 모정은 흙이 묻은 손을 짜증스럽게 털어댔다. 손톱 밑 사이에도 잔뜩 낀 흙은 간단히 터는 것만으로는 도저히 떨어지지 않을 것 같았다. 사련은 그의 입술 사이로 쏟아질 불평을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그것에 대처하는 가장 좋은 해결책은 처음부터 한 귀로 흘리며 미안하다며 맞장구를 쳐주는 것이다. 다만 사련의 생각과는 달리, 모정이 말한 것은 그런 자잘한 불만 따위가 아니었다. 툭 던져진 한 마디는 제대로 전해지지 못했다. 사련이 그가 말할 것에 충분히 집중하고 있지 않았던 탓이다. 그것을 차마 무슨 말을 했느냐 되물을 수가 없다. 할 수 있는 것은 적당히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치는 일이었다. 이런 일은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을 가장하며 넘어가는 것이 좋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풍신과 모정은 영 미묘한 표정이 되었다. 아무래도 그런 일마저 마음 먹은 것처럼 되지 않은 듯싶다. 한숨을 내쉬지 않는 데에는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오래 지나지 않아 둘은 상천정으로 떠났다. 드물게 소란스러워졌던 산은 아주 잠시간이었고, 적막에 감싸인 채로 돌아가기에는 많은 시간이 들지 않았다. 혼자라는 실감은 다시금 강하게 들었다.

 사련은 모정이 건넸던 말을 떠올렸다. 자세히 들을 수는 없었지만, 무슨 내용인지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아마도 저것들이 무슨 나무일 것이다, 하며 추측을 건넨 것이겠지. 모정을 향한 미안함이 뒤늦게 밀려온다. 굳이 말해주었던 것이 무색하게, 그것은 사련에게 있어 중요한 문제가 아닌 탓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처음부터 나무의 품종을 잊거나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터였다. 정말로, 사련의 신경이 쏠리는 곳은 전혀 다른 부분이다. 마침 머리 위를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이 강하다. 나뭇잎과 가지들이 부딪히는 소리에, 그쪽으로 시선이 돌아갔다. 붉게 타오르는 단풍 사이 드문드문 자리를 잡은 가지들은, 새로 살 곳을 탐색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몸을 넓게 핀 채로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는 듯했다. 겨우 새 나무가 몇 그루가 생겼을 뿐이지만 황극관의 모습은 전보다도 훨씬 생기 있게 느껴졌다. 처량하게 낡은 건물은 무엇 하나 변하지 않았는데도. 사실은 그가 제발 그렇기를 바라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꽃이 필 날을 기대하는 마음이 벌써부터 이런 식으로 움직인 걸지도 모른다. 정말로 꽃들이 피기까지는 몇 달이면 충분할 것이다. 닥치기 전까지는 그것이 아름다울지 알 수 없다. 그것을 알고 있음에도, 사련이 내심 보기에 좋은 광경을 바라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하나를 이루면 다른 하나를 더 바라게 된다고, 이렇게 되니 당연하다는 것처럼 또 하나 욕심 가는 일이 생긴다. 그 내용이 스스로 생각해보아도 기가 차는 수준이다. 어쩜 이리 조급하게 마음을 먹을 수가 있어? 자신을 타일러 보았지만, 사련은 도저히 그만둘 수가 없다. 결국 그 바람을 다시금 상기시키고 마는 것이다. 그가 돌아올 때에는, 흐드러지게 꽃이 필 때이기를. 화성이 사라진 후 겨우 한 달이 지난 때였다.

 처음에는 그저 이 궁색하고 초라한 건물을 가릴 요량이었다. 한 때는 높은 위용을 뽐냈으나, 현재에는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허름해졌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터였다. 기껏 돌아온 화성을 그런 장소에서 맞아들이기에는, 그의 체면을 영 세워주지 못하는 일이 아니겠는가. 사련은 급하게나마 겉모습을 꾸며내기로 마음 먹었다. 건물을 고치기에는 많은 품이 드니, 다른 것부터 차근차근 고쳐나가자. 그렇게 결심하니 숲을 메운 단풍만으로는 부족하지 않느냐는 생각 또한 그를 꼬여댔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그 말은 이치에 맞는 것도 같다. 게다가 화성은 단풍에게 지지 않을 정도로 붉은 옷을 입고 있으니, 나무 사이를 거니는 그를 쉽게 발견하지 못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차라리 녹색 잎이나 색색의 꽃이라면 빠르게 찾을 수 있을텐데. 모든 것이 사련을 부추기며 등 뒤를 떠미는 모양새나 마찬가지다. 결국 사련은 고민 끝에 꽃의 존재를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었다. 그는 자신에게 수 없이 많은 꽃들을 바쳤으니, 이번에는 자신이 그를 위해 꽃을 준비해도 좋을 것 같지 않은가. 이 점을 짚게 되자 사련의 마음은 빠르게 기울고, 행동하는 속도는 더욱더 빨랐다. 그를 막는 손길도 존재하지 않았다. 고작 산에 나무 몇 그루를 옮겨 심는 것이 무슨 문제가 된다고. 사련은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손으로는 나무껍질을 쓸어내리고, 눈동자는 바쁘게 움직여 그들을 담았다. 줄기며 가지 같은 곳에 큰 상처가 생긴 것 같지는 않았다. 뿌리를 덮은 흙은 단단하게 다져진 채고, 쏟아지는 햇빛 또한 부족하지는 않아 보인다. 며칠이 지나 나무가 시들지만 않는다면, 더 이상 사련이 신경 써 줄 일은 없을 테다. 정말로 기다리는 것만이 전부였다. 지금부터는 가지에서 꽃봉오리가 맺히는 것을 지켜볼 수 있다. 하루가 다르게 피어나는 변화는 물론, 떨어진 꽃잎들이 바닥을 메우는 모습까지. 그것들을 보고 있자면 지루할 틈도 없겠지. 사련은 다시금 되새겼다. 이제는 자신을 독려하는 말이나 마찬가지였다.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일이다. 무엇 하나 괴롭지 않고, 지겨워지지도 않을 거야. 바라는 것은 오직 그가 아름답게 피어난 꽃들을 놓치지 않았으면 하는 것뿐이다. 말로 전해 듣는 것은 너무나도 아쉬울 테니까.

 하지만 그런 계절이 되었음에도, 붉은 옷자락은 결코 보이지 않았다. 

 겨울 내내 앙상했던 가지에 자리를 잡는 것은 잎보다도 꽃봉오리가 먼저였다. 사련은 조금이라도 실망스러운 마음이 들지 않도록 자신을 타일러야 했다. 그가 언제쯤 돌아올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마음 속으로 멋대로 바란 일이 생각처럼 되지 않는다고 해서, 실망을 감추지 못하고 화를 내는 모습은 꼴불견이라 할 만하겠지. 사련은 그런 행동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몰염치하지 않았다. 좋아. 한 가지 긍정적으로 생각해보자. 사련은 꽃이 피고 나서야 자신이 심은 것이 벚나무였음을 알았다. 이 일은 차라리 다행이라는 마음이 생기기도 했는데, 만일 화성이 꽃이 피기도 전에 돌아와 저것이 무슨 나무냐 물었다면, 사련에게는 대답해 줄 방도가 없었을 터였다. 이제 그는 화성에게 저것이 벚나무다, 아주 예쁘게 꽃이 피더라, 하는 말을 당당히 전해줄 수 있었다. 이 점은 그리 나쁘지 않다. 사련은 그런 식으로 스스로를 위안하며 빗자루를 들었다. 벚꽃은 항상 멀리서 보는 것이 전부였는데, 막상 가까이하니 떨어지는 꽃잎의 양은 상상을 초월했다. 한 번 쌓일 때마다 치워내지 않으면 금세 흙바닥을 보기 어려운 수준이었으니, 넋을 놓고 구경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사련이 움직이는 대로 빗자루는 바쁘게 바닥을 돌아다니며 꽃잎들을 쓸었다. 이런 일을 한 것이 벌써 며칠 째인 것 같은데, 아직도 꽃들은 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사련의 머릿속에는 문득, 몇 사람들이 떠올랐다. 다른 사람을 부르기에도 부족하지 않은 절경인데, 풍신과 모정을 불러 아직 부족한 옛 이야기를 나누어 봐도 좋을 것이다. 하물며 이곳은 그들에게 친숙하기 그지 없는 장소가 아닌가. 둘이 싫다 하면 노풍을 불러도 좋고. 그라면 아마 꽃을 바라보며 마시는 술이 좋다 말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었다. 그에게 자신이 수련했던 장소를 소개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일이다. 그도 아니라면 아예 몇 귀신들을 초대해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지금에도 그들은 가끔 집을 청소하고 끼니를 챙겨드리겠다며 문을 두드리기 일수였으니까. 조용한 산은 싫지 않은 소란스러움으로 빠르게 채워질 수 있었다. 여러 계획을 세워봤지만, 사련은 그 무엇도 실행에 옮기지 않았다.

 사실은 이런 생각을 한 것이 처음도 아니었다. 아마도 꽃봉오리가 맺혔던 날부터. 하지만 그런 마음은 곧 안개에 싸인 것처럼 흐려지고, 흐지부지 흩어졌다. 그 문제는 오로지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사련은 충분히 알고 있다. 발갛게 물든 봉오리들이 하나, 둘씩 열리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었지만, 어찌 그것을 아무렇지 않게 즐길 수 있단 말인가. 사련은 차마 꽃놀이 같은 형편 좋은 생각도, 먼저 누군가를 부른다는 발상도 마음 편하게 떠올리지 못했다. 하루가 지날수록 떨어지고, 흩날리는 꽃잎들을 지켜보는 것이 전부였다. 그럴수록 화성의 모습은 사련의 머릿속에 강하게 박혀 들어온다. 사련에게 피할 도리 같은 것은 없었다. 떨어지는 꽃잎에서 그의 꽃비가 보이고, 당장이라도 가지 사이로 웃음소리가 들릴 것 같다는 착각을. 그런 사소한 착각 하나하나는 우습기 짝이 없지만, 동시에 사련의 마음을 강하게 쥐어짜는 듯했다. 다른 사람의 앞에서는 보일 수 없는 추태였다. 게다가 그들 또한 화성의 부재를 크게 신경 쓰고 있으니, 그리 편한 자리가 되지 않을 것은 불 보듯 뻔하다. 그리 된다면 차라리 함께하지 않는 것이 처음부터 낫다.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아마 사련은 이 산의 모든 벚꽃이 질 때까지 혼자인 채일 것이다. 그 사실 자체는 힘겹지 않다. 혼자인 것은, 기다리는 것은 얼마간을 그러고 있든 아무 문제가 아니었다. 그 정도는 충분히 각오한 일이었으니. 힘겨운 것은 끊임 없이 솟아오르는 그리움이다.

 떨어지는 꽃잎들은 그 전부가 화성이 남긴 흔적과도 같았다. 핏방울 대신 떨어지던 꽃의 비, 머리 위로 드리워지던 붉은 우산, 자신을 위해 바꾸었다며 말하는 웃음소리. 왜 벚꽃은 이리도 쉽게 흩날리는 꽃인가. 왜 하필 심은 것은 그런 종류의 나무였을까. 봄과 꽃이라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술렁거리게 만들었다. 이것은 꼼짝 없이 스스로 무덤을 판 일이나 마찬가지다. 겨우 꽃나무 몇 그루가 자신을 이다지도 흔들 것이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한 일임이 분명했다. 이러는 와중에도 바람은 불고, 가지가 흔들릴 때마다 벚꽃잎이 떨어진다. 말간 꽃보라는 허공을 몇 바퀴 돌더니, 그것은 단순히 준비운동이었다는 것처럼 사방으로 흩어졌다. 의심의 여지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절경이었다. 꽃잎 몇 장은 장난스러운 바람을 타고선 제 머리 위에도 자리를 잡았다. 사람의 심정을 모르고 자신을 뽐내는 꽃은 무정하다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꽃에는 결국 아무 잘못도 없으니, 사련은 자신도 모르게 떨어트렸던 빗자루를 고쳐 쥐었다. 더 이상 상념에 취해 있어도 의미가 없다는 것은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홀로 조용한 자리를 지키고 있자면 생각이 많아지는 법이다. 한동안 곁에 사람이 없던 때가 길었으니, 그 간단한 일마저 잊어버린 것이 분명했다. 한동안은 그 사실에 익숙해지지 못 할 것이란 예감이 들었다. 추측이라 말하기엔 훨씬 더 강렬한 확신의 감각이 선명하다. 이것 또한 그가 남긴 흔적이라 할 수 있겠지. 사련은 그것을 싫지 않게 받아들이기로 마음 먹었다. 어차피 꽃이 진 후에는 어느 정도 사그라들 터였다. 그 때가 아직도 한참 남은 것 같기는 하지만. 고개를 들어 확인한 가지에는 여전히 꽃송이들이 빼곡했다. 심지어는 그것을 찾아온 손님들마저 발견할 수 있었다.

향기가 적어도 꽃은 꽃이라고, 나비나 벌 같은 것의 방문도 최근 부쩍 늘어난 것 같았다. 그 사이에서 친숙한 은색을 발견할 수 있을 거란 기대는 결코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저절로 눈길이 가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 그것에는 굳이 저항하지 않는 것이 현명한 행동이었다. 나비들은 아래쪽으로 내려오는 법이 없었다. 어디선가 사람에 대한 경계를 착실히 배운 것인지, 사련의 손이 닿을 만한 곳으로는 절대 가지 않는 것이다. 나비들은 그가 마음만 먹는다면 그들을 잡지 못 할 일도 없다는 사실은 전혀 모르고 있을 테다. 역시 자신을 두려워하거나 경계하지 않고, 기쁜 기색으로 날아오는 나비는 단 한 종류였다. 이래서야 무엇을 봐도 그와 연결 짓게 되는 자신의 모습이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 이것은 스스로의 노력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일이었다. 도저히 숨길 수 없는 그리움이 짙다. 눈을 깜박일 때마다 눈꺼풀 아래 서려 있는 그림자가 보였다. 그 그림자를 되새기며 몇 년, 몇 십 년, 몇 백 년을 보낸다 해도 아무런 손해가 아니다. 그래. 기다리는 것은 전혀 괴롭다 말할 심정이 되지 않았다. 흐려지지 않는 그리움은 사련이 평생토록 그럴 수 있을 힘이나 마찬가지였다. 그의 심장을 쥐어짜며 부채질하는 동시에, 절대로 기다리는 존재를 잊지 않게 만드는 것이다. 벚꽃이 지는 동안, 사련은 매일 같이 화성을 떠올릴 것이 분명했다. 이번에는 결코 잊어버리지 않을 테다. 가지가 다시금 앙상해져도 마찬가지였다. 매 해 새롭게 꽃봉오리가 열린다면, 지금과 똑같은 생각을 질리지도 않고 하겠지. 그가 남긴 기억과 흔적 전부가 그 사실을 변치 않게 만들었다. 결국 보이는 꽃잎 전부가 당신을 향한 그리움이고, 애정이나 다름 없다.

 

*  *  *

 

 사련은 아무렇게나 널부러져 있던 빗자루를 주워 들었다. 챙길 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버리고 갔던 것인데, 이렇게 쓸 일이 생겼으니 다행인 일이야. 몇 달 간 방치되어 있던 빗자루는 먼지를 털어낸다면 그럭저럭 쓰기에 괜찮은 수준이었다. 하지만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던 찰나, 사련은 방심하던 사이 빗자루를 빼앗겼다. 화성은 영 불퉁한 표정으로 눈썹을 찡긋거리며, 빼앗은 빗자루를 지팡이 삼아 몸을 기울였다.

 “꼭 형이 고생할 필요는 없는데. 삼랑을 외롭게 할 생각인 거야?”

 삐딱한 자세와 태도에 비해 목소리는 퍽 장난스럽다. 정말로 투정을 부리는 것은 아니라는 표현처럼. 처음 이야기가 나왔을 즈음부터 화성은 틈만 나면 저 이야기를 반복하기 일쑤였다. 그럴 때마다 사련은 일일히 그를 달래야 했는데, 그것이 싫기는커녕 즐겁기 짝이 없다. 본인이 생각해도 이유를 말하지 못할 정도로 이상한 일이었지만, 화성은 그것을 단 번에 알아본 듯했다. 그렇기에 질리지도 않고 같은 말을 반복하는 거겠지. 이 어리광쟁이.

 “하지만, 삼랑아. 황극관은 직접 청소하고 싶다고 몇 번이나 말했잖아. 잊어버린 건 아니지?”

 때문에 사련이 대답하는 어조는 평소의 부드러움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은 채였다. 사련은 다시금 화성에게서 빗자루를 거두었다. 역시, 건물 앞 쌓인 꽃잎들은 그의 예상을 한 치도 벗어나지 않고 수북하게 쌓인 채였다. 건물의 안은 또 어떻고? 먼지를 전부 털고 닦아내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꼬박 걸리겠지. 막막하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사련은 한숨을 쉴 체면도 차리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황극관의 존재를 까맣게 잊어버리고 만 자신의 잘못이었다. 지난 상원절, 화성이 돌아왔다. 삼천 개의 등불과 함께. 그가 어떤 식으로 황극관에 머물렀나 하는 것은 제쳐두고, 둘은 오래 지나지 않아 그 곳을 떠났다. 그러고서는 거짓말처럼 약 두 달간 이곳을 방치한 것이다. 보제마을에 피기 시작한 꽃이 사련의 눈에 들어왔을 때, 사련은 그제서야 벚꽃이 만개했을 태창산 한 구석을 떠올릴 수 있었다. 차마 부끄러움에 얼굴을 들지 못할 일이다. 아무도 없이 꼬박 두 달이 비워진 도관은 얼마나 엉망이 되었을까?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사련은 지체하지 않고 당장 길을 떠났다. 그런 사련의 뒤를 화성이 딱 붙어 따라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러면서도 저렇게 끊임 없이 사련을 회유하는 것이고. 아무래도 그가 일을 시킬 귀신을 부를 수 있다, 하는 것은 꽤 진심인 것 같다. 하지만 사련은 계속해서 거절했다. 이곳을 돌볼 사람이 있다면 그건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바로 나여야 하지 않겠어? 거절은 완곡했지만, 동시에 토를 달 수 없을 정도로 단호했다. 이제는 정말로 도착지까지 온 마당에, 화성 또한 더 이상 필요 없는 토를 달지는 않았다. 사련은 그제서야 안심하고 황극관의 전경을 둘러 보았다.

 다행히 지난 1년 간, 사련이 스스로 할 수 있던 모든 보수를 마쳤던 탓에 방치된 건물은 그리 나쁜 꼴이 되지는 않았다. 어디 망가진 한 군데도 없어 보이고, 깔아 놓았던 길도 변함없는 모습이다. 당시에는 꽤 힘들었던 기억이 아직 남아 있는데, 이런 모습이라면 그것을 비로소 잊을 만큼 큰 보람이 밀려온다. 앞으로는 잊지 말고 틈틈이 살피러 와야겠어. 사련은 한결 홀가분해진 마음으로 바닥을 쓸었다. 질릴 정도로 빼곡했던 분홍빛 융단은 수많은 조각으로 흩어졌다. 빗자루가 일으킨 바람이 근처에 있던 모든 꽃잎들을 건드린다. 종아리 정도의 높이에서 멈추는 작은 꽃보라가 일었다. 그 중 몇 개는 흰옷에 달라붙어, 사련은 그것들을 떼어내기 위해 허리를 굽혀야 했다. 잠자코 있던 화성이 다가온 것은 그때였다. 발치에 걸리는 것이 워낙 많으니, 점점 가까워지는 발소리는 클 수밖에 없다. 스스로가 숨길 생각이 영 없기도 하고. 들려오는 목소리는 나직했다. 은연 중 섞인 온유함이 퍽 듣기 좋은 소리를 만드는 듯싶었다. 저번엔 묻는 걸 잊었는데, 이건 형이 심은 나무일까? 정답을 알면서도 굳이 물어보는 행동이 사련을 간지럽힌다. 그렇다 대답하는 것 외에 다른 도리는 없었다. 사련은 바닥을 바라보던 고개를 들어 올렸다. 시야는 금세 봄날의 광경으로 물들었다. 다른 나무들에게서 난 푸릇한 새순, 바람을 타고 간간히 떨어지는 꽃잎. 맑은 하늘과 속눈썹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까지. 그 중심에는 화성이 보란듯이 서있다. 그가 존재하니 다른 것은 결코 주인공이 될 수 없었다.

 나무 사이 붉은 옷자락을 발견하는 헛된 공상을 한 적이 있다. 하지만 아무리 뚫어져라 쳐다봐도 없는 게 생기지는 않고, 오히려 마른 눈만 지독하게 아파졌다. 그 후 눈을 감으면 눈꺼풀 아래 그려진 모습을 끝없이 생각하는 것이다. 사련은 난생 처음으로 자신이 무언가를 상상하는 데에는 영 재주가 없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흐드러진 벚나무를 뒤로 한 웃음은 생각했던 것과 같은 모양인데, 전혀 다른 모양이기도 하다. 이것이 도대체 어찌 된 일인가. 고민을 방해한 것은 아주 작은 존재였다. 벚꽃 한 송이가 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꽃자루 채로 떨어졌다. 그것은 곧 화성의 머리 위로 내려 앉았는데, 이는 사련이 지난 시간 동안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광경이다. 현실은 언제나 한 때의 상상을 가볍게 뛰어넘었다. 얼빠진 환상 속에서 끄집어내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옛 기억과 기다림으로 점철되었던 공간은 비로소 현재로 돌아온 것 같았다. 사련은 눈을 깜박였다. 정신을 다잡을 새도 없었다. 보지 못했던 것을 깨닫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지는 꽃은 그리움이고, 동시에 아름다움이었구나. 그것을 지금에야 진정으로 알았다.

 실은 만개한 꽃을 직시할 수 없었다. 그 위로 네 존재와 기억이 덧씌워져, 꽃만을 바라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기껏 심은 벚나무에게는 미안해 고개를 들 수 없었지만, 스스로의 의지로 그만두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제는 인정하고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진정으로 이 광경이 아름답다 생각할 수 있었다. 모든 것이 제 빛을 발할 수 있는 순간이 왔다. 사련은 손을 뻗어 떨어진 꽃을 떼주었다. 화성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는 것처럼 놀라는 기색 하나 보이지 않는다. 그 모습이 또 한 없이 그다워서, 사련은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렸다. 화성은 그것을 바라고 있었다는 것처럼 마주 미소를 지었다. 나무 사이로 스며드는 빛줄기가 그 무엇에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따뜻했다. 이제 괜시리 꽃비를 기다리는 일은 하지 않을 테다. 보이지 않는 은빛을 찾으며 나비를 좇는 짓도. 더 이상 조각난 그리움은 필요 없는 것이다. 그러니 이제 꽃들은 그런 존재가 아니었다. 떨어지는 꽃잎들은 그 전부가 봄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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