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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가지 옛 이야기를 하자. 벚꽃과 매화는 그 모양이 비슷하다 유명한 꽃인데, 태자전하께서는 단 한 번도 그 두 꽃을 헷갈리신 적이 없다. 나무를 가리키고 이것이 무슨 꽃이냐 물으면 척척 대답을 해주시는 것이다. 다만 그 사실이 놀랍다며 칭찬을 하기에도 영 적절하지 않았다. 애초에 꽃의 구별 같은 건, 특징과 차이만 제대로 잊지 않고 있다면 틀릴 수가 없는 일이 아니던가. 모두가 이런 것은 뽐낼수록 부끄럽고 체면이 세워지지 않는 종류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 까닭에 그것은 아주 작은 일 중 하나로 남게 된 것이 전부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시종 중 한 명은 문득 깨달았다. 전하께서는 벚꽃보다도 매화를 퍽 좋아하신다고. 이는 누군가에게 득달 같이 달려가 말할 거리가 되지 않았다. 그 정도로 별 것 아닌 일이었지만, 가까운 사람으로서 그의 새로운 무언가를 알게 된다면 기분이 싫지만은 않은 법이다. 그것이 사소한 일일수록 더욱. 그 사실을 알게 된 계기도 특별할 것은 하나 없는 하루였다.
 이 나라의 국민은 모두 풍광 높으신 태자전하를 사랑하고 있다. 이는 하늘과 땅이 뒤집혀도 바뀌지 않을 사실 같았고, 시종의 기분마저도 기쁘게 만드는 일이었다. 의심의 여지라 할 것은 찾아볼 수 없었다. 지금도 어린 아이 한 명이 눈을 빛내며 꽃가지를 내밀고 있지 않나. 아이의 얼굴은 선망으로 붉게 상기된 채였다. 차마 태자전하의 얼굴을 직접 바라보지 못하겠다는 듯 시선만 힐끔거리는 모습이 퍽 귀엽게 느껴진다. 손에 꼭 쥔 가지는 방금 꺾어온 것처럼 시든 부분이 없고, 눈에 띄는 큰 상처 같은 것도 보이지 않았다. 매념경은 태자의 귓가에 조용히 속삭였다. 민가 쪽에서 꽃놀이를 하고 있습니다. 그 말에 태자는 저 멀리로 시선을 옮겼다. 커다란 나무에서 넘실거리는 벚꽃이 이 거리에서도 보이는 게, 보통 규모가 아닌 듯싶었다. 그곳에서 이런 식으로 꽃을 꺾어온 것을, 고맙다 해야 하는지…혼을 내야 하는지…. 매념경은 미묘한 표정을 숨기지 못해, 아이의 시선이 태자의 얼굴에 못박힌 것이 다행인 수준이었다. 하지만 태자는 부드럽게 웃으며 아이가 내민 가지를 받아 주시는 게 아닌가. 조각조각 떨어져 나오는 나무껍질과 먼지 같은 것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주인이 그러니, 매념경은 자신이 앞장 서 무어라 말할 입장이 되지 못했다. 그가 그런 어려움을 겪고 있건, 말건, 무사히 꽃을 건넨 아이는 말을 더듬는 것도 서슴지 않고 외쳤다. 매, 매화꽃이니까, 전하께서 좋아하실 것 같아서…. 처음에는 어린 아이 특유의 빽 소리를 지르는 어투였으면서, 끝으로 갈수록 말꼬리는 점점 불분명해진다. 게다가 시선으로는 계속해서 매념경을 힐끔거리는 모습은 긴장으로 역력한 심리를 사정 없이 밝혀버렸다. 매념경은 자신의 입술 사이로 흘러 나오는 한숨을 간신히 참아냈다. 태자는 아무 난감함도 보이지 않고, 그저 고맙다며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을 뿐이다. 그 대가를 위해 모아둔 모든 용기를 끌어 썼던 아이는 도망가다시피 물러났다. 이 일은 머지 않아 저 아이의 커다란 무용담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아무리 민가로 나오셨다 해도 그 태자전하에게 다가가 꺾은 꽃가지를 건네다니, 보통 어린이의 담력으로는 하지 못할 짓이 아닌가? 그리 생각하니 매념경도 결국에는 새어 나오는 작은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태자는 퍽 장난스러운 얼굴로 그의 시종을 바라 보았다.
 “기분이 안 좋은 줄 알았는데.”
 그 말에 가시는 담겨 있지 않은 채라, 매념경은 헛기침을 한 번 하는 것만으로 치밀어 오르는 머쓱함을 묻어둘 수 있었다.
 “제가 어찌 그러겠습니까? 전부 전하를 흠모해 저지른 일인 것을요.”
 말을 끝냄과 함께 시선의 방향은 나뭇가지로 옮겨 갔다. 분홍빛으로 만개한 꽃은 가지가 움직일 때마다 가볍게 흔들렸다. 그래. 어찌 되었건 이곳의 모든 국민이 전부 태자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나 다름 없다. 그렇지 않다면 이런 간 큰 일이 가능할 리가 없지 않은가. 하물며 그런 어린 아이 한, 둘이 준 꽃이 무슨 문제가 되겠어? 정색하고 기분이 나쁘다, 너무 무른 대처였다, 말하는 것이 더욱 난감한 일이었다. 다만 그것과 별개로 마음에 걸리는 것은 딱 한 가지 있었는데, 그것은 아무래도 제 눈이 잘못됐나 싶어 자신도 모르게 눈동자를 흘겨 뜨게 만드는 것이다. 고민 끝에, 직접 여쭈어 보는 것 외에는 다른 도리가 없었다.
 “하지만 전하, 그 꽃, 벚꽃이지 않습니까?”
 매념경은 아이가 이것을 매화라 불렀던 사실을 똑똑히 기억할 수 있었다. 자신의 얼굴을 연신 힐끔거리며 눈치를 보기도 했으니, 차마 신경 쓰지 않고 넘어갈 수 없다는 말이 어울리는지도 몰랐다. 꽃의 구별 정도야 그 또한 간단히 할 수 있는 일이다. 애초에 지금은 매화가 필 계절이 전혀 아니었기도 하고. 언뜻 보아 비슷하게 생긴 것은 맞으니, 어린 아이야 확실히 헷갈릴 수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매념경이 알기로는, 태자전하는 이 점을 모를 분이 전혀 아니었다. 역시나 태자는 전혀 놀란 기색을 보이지 않고, 그저 웃는 얼굴을 유지한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무어라 더 채근하지 않아도 매념경이 원했던 대답은 쉽게 흘러 나왔다.
 “네가 틀렸다며 면박을 줄 수도 없는 일이 아니냐. 이것을 매화라 생각하고, 그 마음으로 주었으니 이제 이것은 매화라고 해도 좋아. 내가 그렇게 여길 테니. 내 말이 틀렸느냐?”
 저런 식으로 질문하고 있지만, 사실은 자신이 틀렸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을 터였다. 이것은 분명 그렇지 않다 대답할 것이란 걸 알고 하는 말이다. 매념경은 살며 태자가 틀렸다고는 여겨본 적 없는 사람이고, 만일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대체 어떤 식으로 당신이 틀렸다 말할 수 있을까. 참으로 고약하다. 하지만 악의는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저 자신을 그렇게까지 믿고 있을 정도인 것뿐이다. 그렇지 않다면 결코 꺼낼 수 없는 화법임이 분명했다. 결국 매념경은 고개를 저었다. 태자는 만족스러운 것처럼, 마주하던 눈동자를 꽃가지에게 돌렸다. 한순간에 매화가 되어버린 벚꽃은 퍽 가녀린 인상이었다. 꽃잎은 끊임 없이 잘게 흔들렸다. 피어 오른 벚꽃이 사람의 마음을 설레게 하고, 또는 뒤흔드는 까닭은 그 모습에 있는지도 모른다. 때문에 태자 또한 흘러가듯 말을 내뱉었다. 그리고, 벚꽃보다는 매화가 더 좋아.
 별안간 들려오는 소리에 매념경은 숙였던 고개를 치켜 들었다. 태자와 몇 년을 알고 지냈는데, 이는 처음으로 들어보는 일이었던 탓이다. 태자는 별 것 아니라는 것처럼 웃어 보였다. 쉽게 지는 꽃과 군자가 있다면 후자를 택하기 마련이지. 눈을 맞춰 오는 시선은 동의를 구하는 표현과도 같았다. 매념경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태자의 말을 곱씹을 수 있었던 것은 그 다음의 일이다. 하지만 뒤늦게라도 곰곰이 생각해보았을 때, 이는 그리 틀린 말도 아닌 것 같다. 아마도 태자처럼 수련을 거친 자들이라면 다들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겠지. 그 까닭에 그는 아무런 토를 달지 않았다. 아무런 반론도 돌아오지 않자, 태자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매화만이 아니야. 군자의 식물이라면 그 어떤 꽃보다도 그것들이 좋겠지. 매념경은 내내 태자의 말을 경청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나는 아무래도…너희의 지조와 충성이라는 걸 생각보다 더욱 믿는 것 같구나.”
 말이 끝맺어졌을 때, 매념경은 잘만 움직이던 자신의 발에 걸려 넘어질 뻔하였다. 지금까지는 어떻게든 넘길 수 있었는데, 이번에야말로 태연을 가장하기가 어렵다. 매념경은 실룩거리며 올라오려 하는 입꼬리를 억누르는 데에 자신의 모든 집중력을 사용해야 했다. 이런 말을 들은 장본인이 자신 혼자라는 사실이 이렇게 안타까울 수가 없었다. 이 곳에는 없는 세 명의 얼굴이 머릿속에 피어 올랐다. 나중에 기회가 생긴다면 이런 말씀을 하셨다 꼭 전해주어야지. 이것은 태자의 시종으로 있으면서 들을 수 있는 중 최고의 찬사를 받은 것과도 같았다. 기분이 좋지 않을 시종이 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채신머리 없이 그 사실을 전부 드러낼 수도 없는 노릇이라, 괜한 헛기침 소리가 둘 사이의 빈 공간을 메웠다. ─그야 당연하지요! 전하께서 그리 믿지 않아 주신다면 저희의 체면이 무어가 되겠습니까? 매념경은 고개를 높이 치켜 들었다. 한없이 들뜬 기색을 숨기기 위함이었다. 그럼에도 목소리에는 차마 감추지 못한 자부심 같은 것이 듬뿍 녹아 있었지만. 그 정도는 숨기려는 시종의 마음을 헤아려주고 웃으며 넘어갈 만하다. 태자는 다시금 부드러운 표정과 함께 말을 건넸다. 네 말이 맞다. 너희는 계속해서 나를 따라줄 텐데. 그걸 우리 모두가 믿고 있어. 내가 구태여 말할 필요는 없겠지. 고개를 끄덕이는 그의 표정은 크게 만족스러워 보였다. 매념경은 단전에서부터 벅차 오르는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많은 것들이 섞여 있지만, 가장 적합한 이름을 붙인다면 충성과 동경이라는 것이겠지.
 “전하. 저희 넷의 생각은 전부 비슷할 테니, 제가 감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저희는 평생 전하의 곁을 떠나지 않을 생각입니다. 혹시 또 모르는 일 아닙니까? 전하께서 먼저 저희들이 지겨워지실지도요.”
 오직 진중함만 있다고는 볼 수 없는 장난스러운 말이다. 하지만 그것이 거짓이라는 생각 또한 들지 않았다. 태자는 꽃가지를 쥔 손에 조심스레 힘을 주었다. 아이가 준 선물이 더 큰 것을 낳았구나. 큰 약속을 받아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사람이 이리도 기쁜 심정이 되기도 어려운 일이다. 매념경은 다시 한 번 입을 열었다. 이번에는 무거움을 벗어내기 위한 장난스러움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저희는 평생 전하를 따르고, 항상 전하의 곁에 있을 것입니다. 마주한 서로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봄날에 지독히도 어울리는 맹세였다. 그러니 아무도 짐작하지 못했겠지. 그것이 어린 치기에 불과했음을.
 고요한 곳에서는 시간의 흐름을 알아채기가 힘들다. 과장을 조금 보태서, 매념경은 저 반쯤 보이는 해가 지는 것인 것 뜨는 것인지 구별하기도 힘들 정도였다. 방위를 파악한다면 어렵지 않게 알 것이지만, 그렇게까지 할 마음도 들지 않았다. 일출과 일몰을 구분한다 하여도 달라질 것이 없는 탓이다. 더 이상 열리지 않을 동로산은 적막하기 그지 없다. 이런 곳에서 굳이 낮과 밤을 떼어놓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지. 매념경은 그런 것을 고민하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그리 해봤자 이 노인을 피곤하게 만들 뿐이다. 액면가는 젊다 말하기 충분한 청년임에도, 그는 자신을 노인, 어르신이라 칭하기를 그만두지 않았다. 하지만 반대로 어리다 말할 것도 전혀 아니지 않은가. 그가 이런 식으로 주장을 하면 반박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이다. 그런 노인만 가득한 곳이 바로 동로산인데, 무슨 활기를 찾아볼 수가 있겠나. 바로 그 이유일 터였다. 이제는 언제 즈음의 일이었는지 셈해보기도 무서울 정도로 까마득한 옛날이 생각난 것은. 무엇인들 불가능한 게 없을 것 같은 자신감에 차 있었다. 스스로가 태자전하의 곁을 떠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치 못했다. 우리는 평생 한 마음으로 같은 길을 걸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젊은 혈기의 겁 없는 맹세는 전부 그런 것에서 비롯되었음이 분명했다. 지금 생각하면 고개를 들 수 없을 정도로 부끄러운 일인데, 얼굴이 붉어지기는커녕 저도 모르게 하얗게 질려가는 것이 느껴진다. 매념경은 막연히 하늘을 바라보기를 멈추었다. 손 끝이 차니 온기가 필요하다. 그리 생각해 집안으로 들어서니, 잊고 있었던 문제가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올랐다. 매념경이 지내는 집은 그리 크지 않았다. 때문에 문을 열면 중앙에 놔둔 탁자가 바로 시야에 들어오는데, 그 위에는 훌륭한 생김새의 화병이 하나 놓인 채다. 꽂혀 있는 것은 상처 없이 깨끗한 데다가 활짝 핀 벚꽃들이 살랑거리는 나뭇가지였다. 이것은 사련이 몇 시진 전 들러 가져다 준 물건이었다. 황극관 앞에 벚나무를 심었으니 국사에게도 보여드리고 싶었다면서. 매념경은 차마 제자의 선물을 마다할 수가 없었다. 사련의 잘못이라 할 것은 아니다. 그가 어떻게 저 꽃가지가 들춰내는 기억을 알겠어. 오히려 작은 전하에게는, 스승을 잊지 않았으니 칭찬해야 마땅한 일이지. 그래. 장본인 둘을 제외한다면 아무에게도 잘못이 없다. 저 살랑거리는 분홍빛 꽃이 자신의 속을 아무리 헤집어 놓아도, 그것은 꽃의 잘못이 전혀 아니라는 말이다. 다만 그렇기에 더더욱 가슴 속이 울렁거린다.
 슬슬 매념경의 시선은 탁자에 둘러 앉은 세 개의 빈껍데기에게 다가갔다. 볼품 없이 엎어져 몸을 가누지 못하는 꼴이 우습다. 한참 전에 뒤엎어버린 패들도 엉망으로 널부러진 채였다. 어질러진 것은 비단 탁자 위만이 아니라, 바닥으로 떨어져선 굴러가 버린 것도 상당하다. 그것을 일일이 주울 마음이 당장은 들지 않았다. 그럼에도 억지로 떨어진 패들을 주워 정리하던 중, 숨길 수 없이 깊은 한숨이 흘러 나온다. 가슴께에서부터 목구멍까지 무언가 단단히 걸린 것처럼 답답한 감각이 선명하다. 역시 더 이상 미룰 수는 없었다. 동로산에는 한 때 거대한 신관이었던 자가 진압되어 있는 터였다. 자신은 슬슬 그를 돌보러 가야 했다. 그것은 특별할 사건이 아니다. 과거에 그를 모시지 못했으니 이번에는 그럴 수 있도록 결정한 것뿐. 남은 생은 그런 식으로 보내기로 마음을 먹은지 오래다. 마음에 걸리는 부분은 차게 식은 손과 난장판으로 헤집어진 속이었다. 그가 이런 것을 눈치 채지 못할 리가 없다. 그것이 어디에서 보나 확실한 일이었으니, 지적 받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매념경은 무거운 심정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향하는 곳은 동로의 아래였다. 다리를 움직일 때마다 무언가가 달라 붙기라도 한 것처럼 묵직하다. 도착지와 끝이라고 할 것 없는 길을 걷는 것 같았다. 하지만 동시에 그에게 도달하기까지 얼마나 남았는가를 확실히 가늠할 수 있었다. 이제는 고작 몇 걸음만이 남았다. 그의 흰 옷은 어둠 속에서도 쉬이 눈에 띄는 종류의 것이었다. 또는 그이기에 그럴 수 있는 걸지도 모르고. 그가 바로 태자전하이기에, 또한 자신은 그의 시종이기에…. 머리를 더욱 어지럽히는 생각은 그만두자. 마침 눈이 마주친 참이다.
 군오의 얼굴은 변함 없이 준수했으나, 동시에 무척 큰 피로감이 서려 있었다. 선경에 있을 적 그의 몸을 감싸던 여유와 강대함 같은 것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 모든 것이 그의 생김새를 단순히 젊은 청년으로 보이지만은 않게 만들었다. 정리하자면 지독한 쇠약함이다. 다만 이상하게도, 그런 기운이 되려 그를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는 것은 이상한 점이다. 매념경은 조심스레 군오에게로 다가갔다. 직전까지만 해도 무겁기 짝이 없던 발은 참 쉽게 움직였다. 역시 뭐라 해도 골백번의 걱정 보다는 직접 마주함이 더 낫다는 뜻일까. 그 이유는 정확히 말하기가 어렵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자각하기 이전 매념경의 다리가 먼저 움직였다는 점이다. 군오는 그리 행동하는 매념경을 말 없이 바라 보았다. 어쩐지 그 행동이 평소보다도 훨씬 길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알 게 된 것이, 확실히 시선 속 일전의 일그러짐 같은 것은 확연히 줄어들었다. 난폭과 광기라는 것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고는 말할 수 없다. 하지만 그들이 차지하던 면적은 확연히 적어지고, 이제는 이름 붙이기 어려운 다른 복잡한 것들이 빈 곳을 메꾼 것이다. 그럼에도 매념경은 그것을 전부 감내하는 데에 힘겨움을 느꼈다. 흔들리지 않는 시선을 의식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 그 까닭에 매념경은 자신의 팔뚝을 향하는 손의 존재를 깨닫지 못했다. 갑작스러운 접촉에 소스라치게 놀라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군오는 매념경의 한 쪽 팔뚝을 부여 잡았다. 잡힌 자는 손을 뿌리치지 않도록 본능적으로 움직이려는 몸을 진정시켜야 했다.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손은 떨어졌는데, 그 안에서는 상상도 하지 못한 물건이 나왔다. 떨어진 벚꽃잎 한 장. 매념경은 자신의 이마를 후려쳐야 하는 것은 아닌가 고민에 빠졌다. 군오는 자신의 눈을 어지럽히던 것이 실제임을 확인했다. 그의 손바닥 위 얇은 꽃잎은 당장이라도 힘 없이 부서질 것만 같다. 마음만 먹는다면 이것을 당장이라도 짓이길 수 있었다. 무참한 행동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그러지 않는 이유는 더 이상 구미가 당기지 않는다는 것이지.
 꽃을 숨기고 싶었던 매념경의 노력은 허사로 돌아갔다. 결국 사실대로 말하는 것 외에는 도리가 없다. 아마 자신이 그러지 않아도 그는 단 번에 눈치를 챘을 거라 확신할 수 있었다. 슬슬 이런 꽃들이 필 때입니다. 그 말에는 아무 대꾸하지 않은 채로 군오는 눈을 깜박였다. 눈꺼풀에 가려졌다, 드러났다를 반복하는 눈동자에는 이전의 총기는 없었다. 시선은 손바닥 위 꽃잎에 못 박혔지만, 실제로 보는 것은 어느 먼 곳이기라도 한 것처럼 막연했다. 벚꽃이구나. 짤막한 한 마디는 매념경의 짐작에 힘을 실어 주었다. 태자가 보고 있는 것은 자신이 떠올린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을 어느 날의 과거일 테다. 아래를 바라보던 군오의 고개는 서서히 올라갔다. 이제 매념경이 그의 표정을 확인하려면 자신도 똑같이 고개를 들어올리는 방법뿐이었다. 하지만 그것조차 염치라는 것을 전부 잊어버리는 행동 같아, 그가 볼 수 있는 것은 여전히 군오의 턱 아래 부근 정도였다. 마른 입술은 곧 느릿하게 벌어진다. 한 때는 벚꽃이 싫었는데…. 매념경이 모를 수 없는 사실이다. 귓속에서는 그 당시 태자의 웃음소리가 울렸다. 온화한 웃음과 단조롭기 그지 없는 말씨는 지독하게 대비되었다. 물론 말하는 입장에서는 그런 것까지 신경 써 줄 이유가 없다. 때문에 군오의 말은 분명히 끝맺어졌다.
 “이제는 무엇이 더 좋다 말하기 힘들어.”
 이는 매념경의 가슴 한 켠을 사정 없이 후벼 파내는 꼴이었다. 목소리에서 배어 나오는 탈력감이 짙다. 그것이 정말로 군오의 심정인지, 듣는 자신이 그렇게 느끼는 것인지 구별하기가 두려웠다. 입과 목구멍은 순식간에 바싹 말라버렸다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자신이 대체 무슨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전부 자신의 잘못이라고? 그리 하는 것은 치가 떨리는 뻔뻔함 그 이상도, 이하도 되지 못했다. 대체 왜 이런 상황이 된 것인지 따져보는 일은 어리석기 짝이 없는 짓이다. 끊임없이 들춰지는 옛 과오가 발목을 잡은 것이 분명하다. 치기로 가득 찼던 과거가 원망스러울 정도였다. 겁도 없이 자신감으로만 콧대 높았던 맹세,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도망쳤던 배신. 어린 시절은 까마득했지만, 동시에 바로 어제의 일과 같이 생생했다. 그것은 절대로 차나 마시며 이야기 꽃을 피울 화제가 되지 못한다. 애초에 기억을 공유하는 인물은 이제 단 둘뿐이었다. 지지 않을 충성과 절개를 약속했던 군자들은 사라졌다. 쉽게 지는 꽃이 싫다 말한 것이 무색하게. 벚꽃은 바람이 불 때마다 쉽사리 떨어졌다. 그런 가련함은 오래 버티지 못할 거라 고개를 저었다. 매화는 자신들은 그러지 않을 것이라 충절을 약속했다. 그러니 끝까지 남는 것이 있다면 너희의 존재라고 여겼다. 하지만 군자의 이름을 가진 것들은 영원히 남지 못했다. 변하지 않은 것은 결국 이런 것이었다. 그리운 기억 한구석, 시시때때로 그 날을 상기시키는 벚꽃잎 한 장에 불과했다.….
 둘 사이에는 오직 정적만이 존재했다.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서로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느냐는 것쯤은 한 눈에 꿰뚫어볼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말수가 적어지는 것은 바로 그 이유 탓인지도 모른다. 눈동자에 얼룩진 과거의 그리움에 대체 무슨 말을 걸 수 있단 말인가. 그럼에도 매념경은 군오의 한 손을 조심스럽게 감싸 쥐었다. 그 일련의 동작에 어색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한 때 수없이 그의 시중을 들었던 것과 다를 바가 아니다. 받는 쪽도 별반 다른 감상을 가진 것 같지는 않았다. 입술 사이로는 마르다 못해 갈라지기 일보직전인 목소리가 흘러 나온다. 전하. 손가락 끝은 꽃잎을 집었다. 찢어지지 않은 것이 용할 정도로 작은 꽃잎이다. 더 이상 아무도 이것을 단순히 가련하다 말하지 못했다. 처음부터 그런 것과는 전혀 동떨어진 꽃이었다는 사실을, 우리만 모르고 있던 것은 아니었을까. 전하. 벚꽃을, 보러 갈까요. 이제는 그것을 확인해야 할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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