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배경.png
02 리안.png

  눈을 깜빡이면 수많은 벚꽃이 눈과 함께 쏟아져 내린다. 누군가의 간드러진 웃음소리와 함께. 그 웃음소리는 무척이나 즐거운 목소리라, 자연히 그 즐거움을 남에게 퍼트릴만한 커다란 힘을 가지고 있었다. 벚꽃과 뒤엉킨 그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계절이 다른 두 가지의 아름다운 것들이 뒤섞여, 비로소 하나가 되면 그것들은 영원히 간직해도 모자란 것들로 변한다. 여러 자연물이 한데 뒤섞인 곳에서 아름답게 웃고 있는 그가 손을 흔들었다.

 “명형!”

 그의 자유로운 웃음과 어울리는 목소리가 귓가에 윙윙 울렸다. 봄답지 않은 풍경 안에서 흔들리는 그의 손은 저 아래 소복하게 쌓인 눈과 비슷하게 하얗다. 변덕스러운 날씨 탓에 옷 위에 복실한 털로 보온성을 높인 망토가 유독 하얀 것 중에 눈에 띄었다. 새하얀 눈과 대조되는 옥빛이었다. 그 누구보다 하얗고 맑게 웃으며 그가 한 바퀴를 자리에서 돌았다. 아름다운 옥빛이 아름답게 흔들리며, 그것은 마치 한 폭의 풍경을 담은 명화로 화한다. 명의는 그러한 사청현의 모습에 시선을 고정한 채, 그 모든 움직임을 하나하나 눈에 담았다. 사청현의 콧등과 뺨이 발갛게 달아올라있었다.

 명의, 그러니까 하현은 저 먼 기억 속의 어느 날을 보고 있었다. 이것이 헛된 망상인 것을, 그리고 그 누구보다 이러한 날을 증오하면서도 다른 것보다 우선시 여겨 하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그는 자신 스스로를 갉아먹는 것들을 그저 내버려 두었다. 뼈만 남은 것들이 그들에게 머리를 들이밀었다. 짧았던 옷의 소매가 점차 길어졌고, 걸쳤다고 생각했던 털 망토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옷자락의 가장자리엔 물빛 파도를 수놓은 것이 그저 아름답게 수놓아져 있었는데, 그것은 은은한 빛을 흩뿌렸다. 그 빛이 떨어져 눈 위로 내려앉으면, 그곳에서부터 천천히 공간이 붕괴하여 무너진다. 발아래를 기점으로 비로소 저 앞에 보이는 이까지 부서져 내린 공허에는 오로지 하현과 그의 뼈로 된 물고기들만 존재한다. 뼈만 남은 것들이 그에게 머리를 들이밀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주인에게 배알 없이 몸을 뒤집고 급소인 배를 보여주는 것과 같았으며, 나비를 쫓는 개 마냥 미친 듯이 꼬리를 흔드는 것과 비슷했다. 하현은 창백한 손을 들어 그것을 쓰다듬었다. 하얀 뼈 머리의 찬 촉감이 손끝에서부터 느껴졌다. 그것들은 감히 그를 걱정하는 듯이 굴었다. 무려 절경귀왕인 그를 말이다. 물론 그것이 철저히 모든 것들 위에서 군림하는 그를 두려워하기에, 소멸을 면하고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맹목적인 직선 감정에서 오는 행동임을 모르는 하현은 아니었다. 그랬기에 그것을 당연시 받아들이는 것은 그의 몫임을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을 쓰다듬으면서도, 그의 귓가에 울리는 자유로운 목소리는 멈출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하현은 그것의 원인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순간적으로 손에 힘을 주었다. 그의 손아래 쓰다듬어지던 것이 움찔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이내 그의 손에 산산이 부서질 뻔한 것들을 떨쳐내고, 바닥에 붙어있던 발을 떼 걸어가기 시작했다. 흑수귀역을 벗어나, 그는 어딘가로 계속 나아갔다. 귀에 울리는 목소리는 여전했다.

 그가 발걸음을 옮겨 향하는 동안, 그는 무언가로 계속 변해갔다. 가끔은 예닐곱쯤 되어 보이는 아이가 되었다가, 어떨 때는 허리가 굽은 지팡이를 짚은 노인, 또 다른 때에는 그의 옛 시절과 비슷한… 청년이었다가. 그는 그렇게 걸었다. 간혹 어딘가에 멈춰 돈을 지불하고 음식을 먹기도 했고, 오밤중 산속 깊은 곳에서 노숙도 했으며, 어딘가에 앉아 기예를 파는 사람들을 구경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그는 빛이 바랜 황성을 보았다. 그리고 그러한 황성을 바라보는 그의 모습은 젊은 청년이었다. 청년의 모습인 그는 그리 좋지 못한 옷감으로 지은 옷을 입고 있었는데, 그것은 딱 보기에도 오래되어 보이고 당장이라도 헤질 듯 거칠었다. 신은 닳아 없어졌는지, 그는 맨발로 그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어느 절 앞에 우뚝 멈춰 섰다. 그곳에는 줄지어 넝마를 기워 입은 거지들이 뒤엉켜 잠을 청하고 있었는데, 그가 도착한 시간이 막 동이 터 오를 쯤이라 그들은 누더기를 덮고 잠을 자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곧장 그 사이로 걸어가 걸어 햇빛 한줄기가 들어오는 익숙한 자리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그곳에서도 다른 이들과 다를 바 없이 어느 이가 누더기를 덮고 잠을 청하고 있었는데, 그 얼굴은 다른 이들과 다르게 곱상하고 부잣집 귀인 같이 생겼다. 하현은 그의 앞에서 무릎을 꿇어 손을 뻗어 그의 얼굴을 일부 가리고 있는 머리카락을 넘겼다. 그 귀인 같이 생긴 자의 얼굴은 어느 전의 바람 같은 신관을 어딘가를 닮아 있었고, 혹은 명의가 질리도록 봐왔던 신관의 얼굴을 닮아있었다. 하지만 이는 앞에서 말했던 이들이 아니다. 이는 전부 어느 ‘신관’을 지칭하는 말이지, 이 자는 거지는 신관이 아니다. 하현은 손가락으로 그의 머리카락을 넘기다가, 이내 그것을 세게 움켜쥐었다. 그 머리카락을 세게 붙잡힌 사람은 잠시 몸을 움찔거릴 뿐 깨어나지는 않았다. 하현은 그것을 멍히 바라보다가 미간을 찌푸리며 손을 뗐다. 그리고 그대로 손을 내려 그의 목 부근에 손을 가져다 댔다. 먼지로 더럽혀져 있었지만, 유독 다른 남성들에 비해 가늘고 특징이 도드라지지 않은 하얀 목이 보였다. 하현은 손을 뻗어 그것을 제 손으로 죄어 이 자의 숨을 끊고 싶다는 충동이 뇌리에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실행하지 않았다.

 하현은 그 상태로 몸을 돌려 어디론가 걸어가기 시작했다. 발걸음이 천근과 같았다.

 

 

 

 

 

 

 사청현은 천천히 눈을 떴다. 흐릿하게 열린 눈꺼풀 너머로 밝은 빛이 들어왔다. 콧속을 파고드는 썩은 내와 퀴퀴한 땀 냄새가 이제는 익숙했다. 사청현은 엉망으로 헤친 머리를 손으로 들어 귀를 넘기려 했지만, 땀에 젖은 머리카락으로 뒤덮여있어야 할 얼굴이 오늘따라 시원했다. 분명 그가 자기 전에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일부 가리고 잤을 터인데, 누가 걷어주었는지 얼굴은 평소와 달리 땀으로 얼룩져 있지 않았다. 사청현은 그저 오늘따라 저 사이 틈에서 바람이 세게 불었나, 생각하며 몸을 일으켰다. 서서히 몸의 감각이 깨어나며, 그는 그제야 그의 발아래 쪽에서 원래 느껴지지 않던 누군가의 인기척이 느꼈다. 사청현은 자신이 덮고 있던 넝마를 걷어내 비로소 아래쪽에 있는 이를 바라보았다. 그의 발아래에는 몸을 웅크린 이가 있었는데, 그는 헤진 검은 누더기를 덮고 있었고, 머리 또한 엉망으로 흐트러져 있었다. 그는 사청현이 이곳에 살면서 본적 없던 얼굴이었는데 아무래도 다른 곳에서 온 사람인 성싶었다.

 “하하, 여기는 처음 오셨나 봐요?”

 사청현이 넉살 좋게 그에게 말했다. 그는 몸을 움찔거리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이리 가까이서 보니 생각보다 옷이 거칠지 않았는데, 그는 그것을 캐묻지 않고 그저 바닥 생활을 오래 하지 않았구나, 라고 생각하며 그에게 이것저것 말하며 웃어댔다. 하지만 그저 그의 이야기를 듣고 간혹 고개를 끄덕이는 반응만 보일 뿐 단 하나의 말소리도 하지 않았다. 사청현은 그저 그가 말이 없는 이거나, 혹은 모종의 이유로 말을 못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넘겼다. 저 먼 조그마한 창 너머로 찬란한 아침햇살이 비스듬하게 들어왔다.

 그가 이 황성의 거지 소굴 안으로 만 한 달 정도가 지난날이었다. 처음 말을 하지 못하는―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는 말을 단 한마디로 하지 않았다― 이는 자연히 그 안에 있는 자들에게 동정을 받았는데, 그가 스스로 무언가를 하려고 할 때마다 다른 이들이 그를 대신해 행동했고, 구걸해서 받은 밥 한 덩이를 반으로 쪼개 그에게 나누어 주기도 했다. 물론 다른 이들이 그리 조금씩 도와주었다면 사청현은 그의 옆에 찰싹 달라붙어 그를 도왔다. 아주 작은 사소한 일부터 자신이 덮고 있던 거적을 넘겨주기도 했으며, 이것저것 사소한 일까지 도와주고는 했다. 이제 밖은 봄이 선연해 여린 잎들이 나뭇가지 위에서 고개를 들이밀었고, 일부 꽃들은 성급하게 먼저 피어나 삭막한 환경 속에서 유일무이하게 빛났다. 사청현은 길거리에 앉아 구걸하면서도 그것을 힐끔힐끔 쳐다보다가도 이내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척을 하며 밥덩이를 받아냈다. 그의 가까이에 있는 나무의 나뭇가지에서 벚이 흐트러지게 피어있었다. 벌써 봄이 한 발짝 크게 다가온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사청현은 손을 뻗어 꽃잎이 떨어지는 것을 잡았다. 그의 꼬질꼬질한 손과 연분홍빛 꽃잎이 대비되어 보였다. 그리고 그가 그리 그것을 보고 있을 때 누군가가 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노풍! 이제 돌아와!”

 “……알았어!”

 사청현은 급하게 손에 있던 것을 훌훌 털어버리고 밥덩이를 집어 그들에게 달려갔다. 날이 좋은 봄이라 그런지 오늘의 수익은 두둑하다고 말할 수 있는 정도였다. 봄이 와 슬슬 겨울에 비축해두었던 식량이 떨어져 보릿고개가 찾아올 테지만, 볕도 좋고 날도 좋은 날 마음이 늘어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사청현은 하얀 밥덩이를 들고 곧장 절 안으로 들어가 예전에도 지금도 한결같이 몸을 웅크리고 있는 이에게 밥덩이를 반 갈라 건넸다. 그는 그것을 힐끔 보다가 손을 뻗어 사청현의 손에 있던 반절을 가져가 먹기 시작했다. 만 한 달 동안 지켜본 그는 욕심 없이 그에게 주어진 것을 받아들였고, 다른 이네들보다 체구가 작아 약관에 가까운 나이처럼 보였다. 사청현은 그가 반절의 밥덩이를 먹는 모습을 보며 그의 옆에 앉아 자신도 남은 것을 먹기 시작했다. 혼자 한 덩이를 먹을 때보다 둘이서 하나를 반으로 갈라 조금 부족하게 먹는 것이 더욱더 배부르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의 손에 든 것을 거의 다 먹어 입가를 정리하고 있을 때 저 벽면에 붙은 창 하나에서 무언가 내리는 모습이 보였다.

 사청현은 자신이 무언가를 잘못 보았나 싶어 눈을 비비고 다시 밖을 바라보았는데, 그것은 헛것이 아니었다. 비가 아닌… 눈이 하늘에서 내리고 있었다. 눈이라니? 때아닌 눈에 놀라 그가 그것을 빤히 쳐다보니 정말 봄인 날씨에도 불구하고 하늘에서 눈이 내리고 있었다. 이러한 광경은 그가 예전에 단 한 번만 보았을 뿐 그 이후로 본 적이 없었는데, 정말 희귀한 광경이었다. 사청현은 순간 놀란 탓에 자리에 벌떡 일어나 밖을 바라보았는데 그러한 그의 행동 때문에 그의 옆에 있던 이도 깜짝 놀라 몸을 움찔거렸다. 그리고 순간 절의 문이 열리며 익숙한 얼굴들이 우르르 쏟아져 들어왔다. 갑작스러운 눈에 급히 자리를 정리하고 그것을 피하기 위해 들어온 것 같았는데, 사람들의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오늘은 더 뭘 하기 어렵겠네….”

 “웬 눈? 지금 봄 아니었나?”

 수군거리는 소리엔 그들이 오늘 남은 한 끼를 어찌 때울지 하는 말과 당장 오늘 추위를 날 걱정, 그리고 내일을 걱정하는 말이 섞여 있었다. 갑작스러운 날씨의 변덕으로 졸지에 오늘 굶게 생긴 이들은 불행했다. 사청현도 깜짝 놀라며 그사이에 끼어 떠들기 시작했고, 그 또한 그들과 비슷한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러한 그들을 사청현의 옆에 있던 이는 사청현의 뒤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은 어딘가 날이 서 있었다.

 

 

 

 

 

 

 그리 오후를 옹기종기 모여 배가 고픈 것을 참아내며 비로소 다음날의 해가 떴을 때, 세상은 새하얀 눈으로 덮여 있었다. 하얀 눈과 봄꽃들의 조화는 다른 계절의 것들이 모여 만들어졌기에, 그것은 마치 신화 속 한 폭의 풍경 같았다. 그것을 본 어린아이들은 꺄르르 웃으며 나가 놀기 시작했으며 어른들은 그러한 아이들을 바라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그리고 그것을 보던 사청현도 아이들 사이로 뛰어 들어가, 즐겁게 놀기 시작했다. 벚꽃과 눈의 조화란 감히 절경이라 칭할 수 있을 정도였다. 어른들은 아이와 아같은 청년을 보며 허허하며 웃었다. 말을 할 수 없던 이는 사청현을 보고 시야를 떼지 않았다. 개중 어떤 이가 그러한 그를 발견하고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벚꽃과 눈에 뒤엉켜 한 폭의 풍경 같은 그는 예전과 다르지 않았다. 말을 하지 못하는 그네가 손을 세게 쥐었다. 저 멀리 뛰어노는 그의 모습과 과거의 것이 합쳐져 환상이 아닌, 환상이 눈앞에 펼쳐졌다. 귓가에 누군가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1-1.png
로로로고고고2.png
bottom of page